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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논증과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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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5. 11. 17:55

김명호
김명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저 사람 참 말을 조리 있게 잘하네'라고 하면 그 말에 논리 구조가 탄탄하다는 뜻이다. 설득되기 쉽다. 논리 구조의 핵심은 논증이다.

논증. 말만 들어도 왠지 낯설고 어렵다. 내 생활과 별 관련이 없는 느낌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논증을 '옳고 그름을 이유를 들어 밝힘. 또는 그 근거나 이유'로 정의한다. 논증하는 행위는 일상적 삶에서 이러저러하니 그것이 옳다 틀리다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논증하는 행위는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추상적이지 않다. 어느 누구도 매일 매시간 분별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야만 하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분석, 판단, 결정, 즉 사람이 주어진 문제에 대해 합리적 해결책을 찾는 과정은 바로 논증하는 과정이다. 이쯤 되면 '논증하며 살아가기'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우리 일상 자체가 논증하기로 구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선거. 때가 되면 찾아온다. 공약 정책 개혁 등의 외피를 두르고 통계로 무장한 채 온갖 주장이 분출한다. 후보 당사자나 정치인들을 통해, 정파적 지향성을 지닌 정치평론가들을 통해 이 주장들은 증폭된다. 또 언론은 이를 대량 생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정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선거 결과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치가 생산해 내는 결과가 경제나 사회의 구조와 생산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선거는 최상위 포식자 역할과 기능을 갖게 된다.

선거철의 공약과 주장은 온갖 수식과 은유가 범벅이 돼있다. 구호와 캐치프레이즈는 간단하지만 강렬하다. 그 메시지가 나오게 되기까지 배어 있는 논리 구조 또한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다. 아주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그 메시지의 논리 구조, 즉 핵심 주장을 논증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한 메시지다. 메시지 안의 논증을 쉽게 이해하면 쉽게 설득된다.

어떤 메시지를 끝까지 해부해 모든 수식을 제거하면 전제(근거)와 결론(주장)만 남는다. 논증에도 좋은 논증과 나쁜 논증이 있다. 좋은 논증의 조건은 전제에 거짓이 없어야 하고(진실성), 전제와 결론이 관련 있어야 하며(연관성), 전제가 결론을 뒷받침해야 한다(충분성).

'A 정치인은 공익적 기부를 엄청 많이 했다. 그래서 그가 발의한 경제 법안은 공익에 부합한다'고 홍보했다고 치자. A의 도덕성(전제)과 경제 법안의 타당성(결론)은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전제의 진실성은 갖췄지만 전제와 결론의 연관성은 없는 것이다. 전형적인 논점 일탈이며, 감정에 호소하는 속임수다.

'내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B후보를 지지해. 그가 당선될 게 틀림없어'. 전제는 사실이지만, 수십 명 지지가 지역구 전체의 결론(당선)의 대표성과 충분성을 가질 수 없다. 전형적인 일반화의 오류다. 논점 일탈이나 일반화 오류 등은 수많은 나쁜 논증의 일부분일 뿐이다.

정치인의 메시지에는 좋은 논증과 나쁜 논증이 마구 뒤섞여 있다. 선거 때는 이기기 위해 악마와도 손잡고 싶다는 말이 있다. 정치의 속성이자 냉혹한 현실이다. 메시지에 맞는 팩트를 일단 배치한 뒤, 슬쩍 논리적 연관성과 충분성이 결여된 결론과 주장을 펼친다. 이것이 너무 심하면 궤변이 된다.

찬찬히 살펴보면 주장과 근거를 이어주는 다리가 부실한 정치적 주장들이 참 많다. 합리적이지 않고 타당성이 모자란데, 그것을 교묘히 메꿔주는 게 감성적 호소다. 일부 극성 지지층들의 묻지마 지지는 감성적 호소를 활활 타오르게 하는 정치적 땔감으로 작용한다.

선거는 정치적 선택을 하는 과정이다. 논증의 핵심은 어떤 주장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이다. 상당히 닮은 속성이 있다. 이럴 때 최적의 선택을 위해 필요한 게 비판적 사고다.

저명한 교육학자 로버트 에니스는 '비판적 사고'를 '믿음과 행위를 결정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반성적인 사고'로 정의한 바 있다. 그는 합리적 사고를 원인과 이유를 면밀히 따져보고 검토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반성적 사고는 주어진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해답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보의 홍수와 오염, 가짜뉴스 속에서 참과 거짓의 구별과 신뢰도의 분별이 필요한 선거철이다. 좋은 논증과 나쁜 논증을 구별하는 능력이 살면서 생기는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과 다르지 않다.

논증은 어렵고 추상적인 게 아니라 일상생활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자잘한 것을 포함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판단과 결정을 하나. 그러니 논증 과정을 거쳐 결정하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조그만 자기 이익과 생활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데 부합한다. 선거에 자기 태도를 결정하는 과정도 똑같다.

김명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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