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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범인 없는 범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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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기자

승인 : 2026. 06. 0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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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로 지시된 미션을 완수하고, 인증샷을 보내고, 약속된 보상을 챙긴다. 온라인 게임의 흔한 '퀘스트' 수행 방식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현실의 잔혹한 강력범죄 현장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최근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범죄 대행 시장'의 모습이다. 이제는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누군가를 직접 마주치지 않는다. 협박 하려고 직접 전화를 걸지 않는다. 익명 공간에서 누구나 돈만 주면 맞춤형으로 범죄를 주문할 수 있는 기괴한 비즈니스가 우리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 시장이 굴러가는 방식은 우리가 흔히 쓰는 '배달 앱'과 똑 닮아있다. 화면 속 메뉴판처럼 나열된 범죄 목록 중 원하는 항목을 고르고, 주문한 뒤 돈을 입금하면 배달원이 음식을 가져다주듯 범죄가 실행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비겁한 면죄부'를 부여하는 추악한 거래도 이뤄진다.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파고든 것이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논리로 책임을 떠넘기며 이른바 '변명의 3부작'을 완성한다.

범죄를 지시한 의뢰인은 "나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며 숨는다. 직접 가해를 하지 않았으니 자신은 범죄자가 아니라는 기만이다. 텔레그램과 다크웹을 통해 이를 연결하는 중개자는 "나는 판만 깔아주었을 뿐"이라며 발을 뺀다. 자신들은 수요와 공급을 잇는 플랫폼 제공자에 불과하다는 뻔뻔한 태도다. 마지막 연결고리인 실행자 역시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며 당당하게 항변한다.

범죄 대행 시장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 시장은 범죄를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허술한 시스템 뒤로 숨어 책임으로부터 온전히 도망칠 수 있다는 거대한 환상을 함께 판매한다. 돈을 내면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되고, 판을 깔아주면 개입하지 않아도 되며, 지시를 따르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 나태한 착각은 결국 범죄를 '게임 속 퀘스트' 쯤으로 가볍게 여기게 만드는 인지 부조화를 낳는다.

의뢰인에서 중개자로, 중개자에서 실행자로 책임을 떠넘기는 돌려막기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도덕적 부채는 n분의 1로 쪼개져 마침내 0에 수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법망을 빠져나갈 구멍을 설계하며 사법 체계의 맹점마저 파고들려 시도한다.

하지만 책임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 각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가 잘게 나뉠 수는 있어도, 그 누구의 책임도 결코 0이 되지는 않는다.

모두가 책임을 밀어내고 도망친 그 빈자리에는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진 피해자가 엄연히 실재한다. 파편화된 공정의 톱니바퀴가 되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는 항변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스스로 판단하기를 거부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주화한 대가는 절대 가볍지 않다. 모두가 서로를 가리키며 변명하는 공범들의 추악한 연대 끝에 남는 것은 단지 분절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겨진 피해자의 고통뿐이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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