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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우린 이제 산유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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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6. 0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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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논설심의실장
"우린 이제 산유국 됐습니다."

경제 관료 출신 한 인사는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으키고 있는 돌풍을 두고 이렇게 단언했다. 올 들어 두 회사의 영업이익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삼전닉스(삼성전자+하이닉스)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확산하고 있어 중동 등지 산유국 업체의 기업가치를 초과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본격적으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산유국 대접을 받게 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원유와 반도체. 얼핏 보기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하지만 공통점이 제법 있다. 원유는 매장량이라는 한계가 있을 테고 반도체는 수요라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바닥에 도달한다는 얘기다. 원유 매장량은 이미 실측 데이터를 통해 그 한계를 얘기하고 있다. 반도체 역시 글로벌 경제 성장의 지속성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원유는 수요가 있고 반도체는 사이클이 있다는 점에서 엇비슷하다. 원유 생산을 위해 많은 투자가 필요하듯, 반도체 생산에도 상당한 인력과 재원이 요구된다. 손톱 크기의 반도체 역시 크기는 점점 작게 용량은 점점 더 많게 만드는 데 많은 연구개발(R&D)비를 투입해야 한다.

확연한 차이점도 분명히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은 주로 국가 관리하에 원유를 생산·수출하고 있다. 반면 반도체 업체들은 민간기업이다. 나라가 관리하는 원유는 국가가 직접 가격을 통제하고 공급을 조절해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꾀한다. 국가는 원유로 벌어들인 돈으로 경제 개발에 적극 나선다. 텅 빈 사막을 초고층 빌딩으로 채운 중동 국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막에 강을 만들고 바다에 육지를 조성해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도록 유인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전적으로 민간의 손에 수요와 공급이 결정되고 이익금 역시 민간기업 구성원들에게 전적으로 돌아간다. 삼전닉스에 국한해 얘기한다면 두 회사가 일으키고 있는 돌풍은 구성원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억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토대로 아파트를 구매하고 고급 자동차를 사들이는 것은 구성원들의 전유물에 속한다.

우리 수출은 이제 세계 5위까지 올랐고 주식 시가총액은 10위권에 들어선 지 꽤 됐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미국 달러화 대비 환율이 높은 상태여서 그렇지 가처분소득을 감안하면 이미 4만 달러를 넘어섰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우리의 경제성장은 V자 모양을 하면서 치고 올라오고 있다. 여러 경제지표가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때마침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메모리 반도체가 원유를 대체하는 핵심 전략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의 자산가치가 주요 석유기업을 넘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3개 메모리 업체의 기업가치가 각각 1조 달러를 초과해 사우디 등 글로벌 선두 원유 생산 주요 기업 3곳의 기업 가치를 웃돌고 있다. AI가 메모리 칩을 원유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메모리 산업은 AI 수혜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특히 메모리 업체는 종전의 3년 주기설을 완전히 뒤엎고 하락세의 시작점을 알 수 없을 정도의 지속적인 폭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는 메모리 수요 업체들과의 3년 이상의 장기공급계약 확산이 바탕이 되고 있다. 마이크론은 지난 3월 실적 발표에서 첫 5년 공급계약 체결 사실을 공개했으며 추가 계약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도 최근 실적 발표에서 향후 3년간 수요가 공급 능력을 크게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도 장기계약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지 제법 됐다.

지금 대한민국은 반도체 생산 기술을 토대로 한 독점적 경제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는 원유처럼 가격 변동성이 큰 대표적인 범용 제품으로 평가받았지만,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라 수요가 공급 능력을 크게 웃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는 가정하에, 한국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당분간 기대 이상의 이익을 창출하는 글로벌 경제 리더 국가가 된다는 의미다. 대만과 달리 반도체만 있는 게 아니라 방산, 조선, K-컬처 등 다른 영역에서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기에 더 그렇다.

우리는 이제 글로벌 경제 리더로서 품격을 갖추는 데 국력을 모아야 한다. 국내외 빈부 격차와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반도체 수출로 유입되는 달러화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국가 백년대계를 잘 설계하는 게 긴요하다. 이런 과제는 시작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으키고 있는 성과급 논쟁과 부동산 가격 밀어올리기 등등에서 이미 구체화하고 있다. 건국 이래 최초로 형성되고 있는 반도체 붐을 기반으로 우리 경제와 국격이 몇 단계 업그레이드됐으면 좋겠다.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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