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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국가가 아니라고 200년 전 독일 철학자 헤겔은 말했다. 미국에는 시민 각자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시민사회만 있을 뿐, 시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보편적 구심점으로서의 국가가 없다는 뜻이다. 헤겔은 미국을 '국가 이하'라 폄하한 셈인데, 그의 예상은 미국의 미래를 전혀 내다보지 못한 단견이었다.
헤겔의 예상과는 반대로 19세기가 다 가기도 전에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다. 광대한 북미 대륙에서 활기찬 산업 발전을 기반으로 17~18세기 유럽 계몽주의자들이 꿈꾸던 자유민주 공화국을 거대한 규모로 완성했던 것이다. 하지만 청교도들이 그 기초를 닦은 나라였기에 미국은 계몽주의자들의 기대와 어긋나게도 기독교 전통 또한 강렬했다.
미국이 어떤 세계사적 역할을 할지 아직 알 수 없던 20세기 초, 청년 이승만은 한성 감옥에서 장차 언젠가 도래할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쓰면서, 조선이 본받아야 할 부강한 자주독립 국가의 모델로 영국이나 프랑스 혹은 독일이 아니라 미국을 선택했다. 그것은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 탓만은 아니었다.
청년 이승만이 미국을 "극락의 나라(極樂國)"라 칭송하는 데에는 깊은 이유가 있었다. 미국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기초를 두고 통상으로 부강을 이룩한 철저한 민주 국가인 동시에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25살의 이 젊은이는 미국에서 세속적 욕망과 종교적 욕망, 혹은 계몽주의와 기독교가 서로 이질적임에도 불구하고 절묘하게 만나고 있음을 알았다.
◇서쪽에서 일어나 새로 들어온 햇빛
청년 이승만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과거 합격을 목표로 열심히 배우고 익혀온, 한문에 기초한 중국 문명의 시효가 완전히 끝났음을 잘 알았다. 그는 한문을 아는 조선의 식자층은 이미 다 썩었다는 극언까지 했다. 그는 한문을 모르는 "무식하고 천하며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는 또한 유럽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미국의 문명이 중국 문명과 가장 날카롭게 대립함을 꿰뚫어 보았다. 중국 문명에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전통이 전혀 없었고, 하나님을 천지의 창조주로 믿는 전통 또한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이승만은 옛것을 몽땅 다 버리고 "전적으로 새것을 숭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옛것은 중국 문명이고 새것은 서양 문명이다.
청년 이승만은 서양 문명의 찬란한 빛에 감동하여 그것을 "서편에서 일어나서 햇빛같이 들어오는 새 빛"이라 표현했다. "새 빛"의 가장 중요한 광원(光源)은 물론 미국이었다. 중국 문명을 전면 부정하고 서양 문명을 전면 긍정하면서 미국을 예찬하는 '독립정신'의 '전반서화론(全般西化論)'보다 더 급진적인 혁명사상은 당시의 동아시아 어디에도 없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급진적인 혁명사상
중국의 중체서용론이나 일본의 화혼양재론 혹은 조선의 동도서기론 따위는 동양과 서양, 옛것과 새것 사이의 어중간한 절충론에 불과한 데다 구체성과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손문의 삼민주의 혁명론은 개인의 자유보다 민족의 단결을 너무 앞세웠고, 그 민족마저 새것이라기보다 옛것이었다. 모택동의 공산주의 혁명론은 아주 급진적인 듯하지만 실은 왕조 말기마다 반복된 농민반란 속에 늘 있어 온 옛것에 불과했다.
반면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기초한 이승만의 '총체적 서구화 내지 미국화'론은 요순 이래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게다가 한성 감옥에서 기독교 신앙까지 받아들인 것은 종교를 도외시해 온 공자 이래 수천 년 유교 문명의 전통을 한꺼번에 뒤엎어 버린 사상의 대혁명이었다.
20세기 이후 동아시아 역사의 흐름을 보면 오직 '전반서화(全般西化)'의 길로 갔던 나라들만 번영을 누렸다. 전후의 일본, 남한, 대만, 싱가포르, 영국령 홍콩이 그런 나라들이다. '전반서화'를 거부하고 사회주의로 갔던 나라들은 하나같이 지옥을 경험했다. 군국주의로 갔던 전전(戰前)의 일본은 미국의 군사력 앞에 처참하게 무너졌다.
오늘날 번영을 누리고 있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중국 문명의 전통은 이제 전문가들의 머릿속 관념으로 있거나 아니면 길거리의 관광상품으로 있다. 이것은 중국 문명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서구화되고 미국화되는 정도만큼,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고 통상을 통한 번영의 기회가 확대됨을 말해준다.
◇기독교와 계몽주의의 만남
인간 세상의 현실은 세속적 욕망에 따라 굴러가는데 동서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욕망을 도덕으로 재단하려 든다. 하지만 청년 이승만은 달랐다. 그는 유교 도덕에 구애받지 않고 인간의 욕망과 세속의 현실을 긍정했다.
인간의 욕망과 세속의 현실에 대한 그의 긍정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기독교 신앙과 짝을 이루면서, "천리(天理)를 존중하고 인욕(人欲)을 억압하라"는 주자학의 도덕주의적 가르침에 침을 뱉는 행위가 되었다. 그의 '독립정신'은 그런 침 뱉기를 통해 조선의 유교와 주자학을 허물고 정신적 풍요와 물질적 번영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일제시대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가지 이데올로기를 도덕적 선(善)으로 치켜세워 왔다. 하지만 이승만은 평생토록 사회주의에 단호하게 반대했고, 민족의 자유독립과 함께 개인의 자유독립을 중시했다. 개인의 독립이 없이는 시민사회의 성숙도 없고 국가의 독립과 부강도 없다는 확신에 이승만만큼 충실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인의 독립과 헌신이 국가의 독립과 부강의 기초라는 청년 이승만의 확신은 유럽 계몽주의에서 유래하는 동시에 더 근본적으로는 그가 한성 감옥에서 받아들인 기독교 신앙에서 유래했다. 하나님이 창조주라 믿는다면 인간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 되고 인간은 하나님의 종이 된다. 하나님의 종이 된 인간은 가족이나 국가를 위시한 공동체의 각종 위계질서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될 수 있다.
◇정신적 풍요와 물질적 번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하는 서양 근대의 개신교가 휴머니즘과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계몽주의의 산실이 되었다는 것은 모순처럼 들린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모순이 현실이 되었고, 오늘날 미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개방적인 국가로서 세계를 자신 안에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에서 온갖 인종들이 국법질서에 따라 큰 탈 없이 뒤섞여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은 이제 '국가 이하'가 아니라 '국가 이상'이고, 어쩌면 '미국이 곧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미국에 관한 한 헤겔은 틀려도 너무 많이 틀렸다.
이승만은, 자신의 조국과 자신의 영혼을 위해 평생 기도했던 독실한 개신교인으로서, 평생 미국과 싸우는 가운데 계몽주의와 기독교가 같이 가는 미국을 닮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1948년 마침내 수많은 지식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문명의 전통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나라를 이 땅에 세웠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숭상하는 이 땅의 지식인들이 이승만과 미국을 증오하고 기독교와 대한민국까지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과연 우리에게 정신적 풍요와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민족주의는 민족을 구원한 적이 없고 사회주의는 사회를 구원한 적이 없다. 오히려 민족주의는 민족을 망치고 사회주의는 사회를 망치지 않았던가. 청년 이승만이 개인의 자유를 왜 그토록 중시했는지, 미국을 왜 "극락의 나라"로 여겼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최진덕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