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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은 ‘도토리 키 재기’인데 몸값은 하늘과 땅 차이…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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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필현 국방전문기자

승인 : 2026. 06. 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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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괘짜, 정하웅 KAIST 교수가 던진 질문.....측정 불가능한 영역선 ‘네트워크’가 왕좌 결정
성공은 ‘당신’의 비명이 아니다, ‘우리’의 메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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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우리'의 메아리"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생산성본부(KPC) 조찬 강연회에서 복잡계 물리학의 권위자 정하웅 KAIST 교수가 빅데이터로 분석한 예술가들의 성공 공식을 설명하고 있다. 정 교수는 성과를 측정하기 모호한 영역일수록 개인의 재능보다 집단이 형성한 '연결망(네트워크)'이 왕좌를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대형 스크린에 띄워진 '실패(Failure)'와 '성공(Success)'의 기로를 배경으로 열정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강연하는 정 교수의 모습에서 '우리 시대의 유쾌한 과학 천재'다운 면모가 묻어난다. / 사진=구필현 기자, 자료=한국생산성본부 제공
인간은 끊임없이 성공을 갈구한다. 밤을 지새워 기량을 닦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성과를 쌓아 올린다. 우리는 믿는다. "탁월한 실력이 있다면 결국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고.

그러나 현실은 냉혹한 배신으로 가득하다. 똑같이 치열하게 예술적 혼을 불태웠던 두 청년 중 한 명은 역사상 가장 비싼 화가로 기록되고, 다른 한 명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잊힌다. 품질 차이를 구별하기 힘든 와인 한 병이 어떤 것은 수천만 원에 팔리고, 어떤 것은 몇만 원의 꼬리표를 단다. 이 거대한 격차는 단지 운(運)이라는 실체 없는 단어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한국생산성본부(KPC)가 19일 주최한 '2026 KPC 인문학여행 [통찰과영감]'의 강단에 선 복잡계 및 통계물리학의 권위자 정하웅 KAIST 물리학과 교수는 이 오랜 인류의 질문에 대해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통계물리학과 빅데이터라는 차가운 메스를 들이대어 분석한 인간 사회의 '성공'은 개인의 내면적 성취나 단순한 기량의 산물이 아니었다. 정 교수는 세계적인 복잡계 과학자 대니얼 바라바시(Albert-Laszlo Barabasi)의 연구를 바탕으로 "성공(Success)은 당신이 아니라 우리에 관한 것, 즉 집단이 부여하는 외적인 지표"라고 단언했다.

실력이 지배하는 영역과 정치가 지배하는 영역 사이의 숨겨진 코드를 풀어낸 정하웅 교수의 복잡계 과학 강연을 토대로, 인류가 직면한 성공의 철학적·과학적 법칙을 깊이 있는 통찰로 분석한다.


△ 제1법칙: 성과가 성공을 견인한다, 그러나 측정할 수 없다면 '네트워크'가 결정한다;

물리학이 발견한 성공의 첫 번째 절대 법칙은 '측정 가능성'과 '네트워크'의 상관관계다. 정 교수는 기량이 명확하게 수치화되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스포츠, 특히 테니스를 꼽았다. 테니스 선수의 세계 랭킹과 몸값은 정확히 그들이 코트 위에서 거둔 승률과 데이터에 비례한다. 실력이 곧 성과가 되고, 성과가 곧 성공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투명한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대부분은 이토록 명쾌하지 않다. 대다수의 경영 환경, 학문, 그리고 예술의 영역은 기량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정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와인 품평회에서 전문가들에게 같은 와인을 눈을 가린 채 다른 라벨을 붙여 시음하게 한 결과, 매번 일관된 점수를 준 전문가는 단 18%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 18%마저도 해마다 구성원이 바뀌었다. 인간의 감각과 주관이 개입하는 순간, '절대적 성과'의 기준은 무너진다.

이처럼 성과를 측정할 수 없는 모호한 도토리 키 재기 세상에서 왕좌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연결망(Network)'이다.
실력의 차이가 종이 한 장에 불과할 때, 그 사람이 어떤 공동체의 중심에 서 있고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가 폭발적인 성공의 크기를 결정한다. 결국 성공이란 개인이 뿜어내는 빛이 아니라, 사회라는 거울이 그를 어떻게 반사해 주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 제2법칙: 성과에는 한계가 있지만, 성공에는 한계가 없다.

인간의 생물학적 기량과 노동에는 물리적인 상한선이 존재한다 .아무리 발이 빠른 인간이라도 100m 달리기에서 8초대 벽을 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밤을 새워 일하더라도 하루는 24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즉, 개인이 낼 수 있는 '성과(Performance)'는 종형 곡선(Gaussian Distribution)을 그리며 명확한 한계(Bounded) 내에 갇힌다.

반면, 집단이 부여하는 '성공(Success)'의 영역은 멱법칙(Power Law)을 따른다.
즉, 상위 20%가 전체 부와 명성의 80%를 독식하는 비대칭적이고 한계가 없는(Unbounded) 우주다. 이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클래식 음악 경연이다.
세계적 권위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 오른 12명의 피아니스트들은 모두 신의 경지에 이른 연주자들로, 귀로만 들어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역대 우승자들의 통계를 분석해 보면 주 후반인 금요일에 연주한 이들의 우승 확률이 월요일 연주자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심사위원들이 앞에 들었던 연주들을 기준으로 삼아 뒤로 갈수록 점수를 후하게 주는 '즉시성 편견(Recency Bias)' 때문이다.

스페인 판사들의 면접 합격률 역시 월요일(50%)보다 금요일(75%)이 훨씬 높다는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한다. 실력의 한계 속에서 아주 미세한 외부적 타이밍과 조건이 결합하는 순간, 단 한 명에게 무한대의 부와 명성이 쏠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 제3법칙: 과거의 성공 × 적합성 = 미래의 성공 (빈익빈 부익부의 과학)

복잡계 과학이 증명하는 세 번째 법칙은 다소 서글프지만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성공이 성공을 낳는다는 '우선적 첨부(Preferential Attachment)' 법칙이다.

정 교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Kickstarter)에서 진행된 무작위 투자 실험을 인용했다. 아무런 투자를 받지 못한 프로젝트의 성공 확률은 32%에 불과했으나, 시스템 연구진이 초기 모금액을 인위적으로 살짝 채워주며 '이미 성공 궤도에 오른 것처럼' 보이게 만든 프로젝트는 성공 확률이 74%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무작위로 우수 기여 상패를 부여했을 때 이후 기여도가 60% 가량 폭증한 사례나, 온라인 청원 사이트에서 초기 서명이 몰릴수록 서명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의 성공 기록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자석이 되어 미래의 기회를 끌어당긴다. 단, 여기에 개인이 가진 본연의 가치인 '적합성(Fitness)'이 곱해져야만 일시적 유행을 넘어선 지속 가능한 대성공으로 이어진다. 『해리 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가명으로 추리소설 『쿠쿠스 콜링』을 냈을 때, 평단의 극찬(높은 적합성)을 받았음에도 초기 판매량은 몇백 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체가 J.K. 롤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과거의 성공 결합), 책은 순식간에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초기 인지도라는 불꽃이 튀어야 비로소 내면의 땔감이 타오를 수 있음을 과학은 보여준다.


△ 제4법칙: 팀의 성공에는 다양성과 균형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과는 '개인'에게 돌아간다현대 사회의 거대한 업적들은 대부분 협업의 산물이다.

과학 논문이든 대기업의 신제품이든, 홀로 모든 것을 해내는 독고다이 천재의 시대는 저물었다. 정 교수는 "현대 과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들은 독창적인 솔로 천재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팀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만 모아놓으면 반드시 성공할까?
생물학자 윌리엄 무어의 '닭장 실험'은 리더들에게 깊은 시사점을 준다. 달걀을 가장 많이 낳는 최고의 '슈퍼 닭'들만 한 닭장에 모아두었더니, 서로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피 터지게 싸우느라 다수가 폐사하고 달걀 생산량은 바닥을 쳤다.
반면, 공격성은 낮지만 평범하게 조화를 이루는 닭들의 집단은 평화 속에서 압도적인 생산성을 유지했다.

조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엘리트의 존재보다 다양성과 균형이 필수적이라는 방증이다.
그러나 복잡계 과학은 이 아름다운 협업의 이면에 숨겨진 또 하나의 잔인한 법칙을 들추어낸다. "팀은 균형으로 성공하지만, 집단은 그 성과의 공로(Credit)를 단 한 명의 개인에게만 돌린다"는 사실이다.

공동 연구나 프로젝트가 끝난 뒤 세상이 기억하는 것은 팀 전체가 아니다. 과거에 이미 인지도가 높았거나, 그 분야의 네트워크 중심에 서 있던 특정 개인에게 모든 명성이 쏠린다. 억울하지만 리더와 구성원 모두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집단 심리의 메커니즘이다.


△ 제5법칙: 부단한 노력을 하는 한, 성공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재능도 평범하고 인맥의 중심에 서지도 못한 보통의 인간은 성공을 포기해야 하는가?
정하웅 교수가 제시한 마지막 다섯 번째 법칙은 위로와 희망의 과학이다. "부단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성공의 주사위는 언제든 당신의 숫자를 보여줄 수 있다".

흔히 우리는 예술가나 과학자들이 가장 빛나는 걸작을 남기는 시기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시절이라고 믿는다. 통계적으로도 청년기의 생산성과 성공 확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데이터를 한 꺼풀 벗겨보면 놀라운 진실이 숨어 있다.

젊은 시절에 대작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그들이 뛰어난 천재여서가 아니라, 단지 젊을 때 '가장 많이 시도하고 다작(多作)을 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 시도하는 횟수 자체를 줄이지 않는다면, 인간의 창의성과 적합성은 늙지 않는다. 정 교수는 "주사위를 20대에 백 번 던지는 사람과 60대에 백 번 던지는 사람의 성공 확률은 완벽히 동일하다"며, 끈기와 지속성(Persistence)이야말로 복잡계 우주에서 불확실성을 돌파하는 가장 강력한 개인의 무기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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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웅 KAIST 교수는 르네상스·바록 시대의 가구 디자인(왼쪽)뿐만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오른쪽)에 '황금비 나선형 구조'를 억지로 대입한 인터넷 밈(Meme)을 보여주며, 인간이 가진 '황금률 강박'과 시각적 분석의 한계를 위트 있게 꼬집었다. / 사진=구필현 기자, 자료=한국생산성본부 제공
[에필로그] 미술관으로 간 물리학자가 리더들에게 남긴 질문다시 미술의 역사로 돌아가 보자.

1980년대 뉴욕 거리에서 'SAMO'라는 이름으로 함께 낙서를 그리며 기량을 겨루던 두 명의 동갑내기 청년 예술가 알 디아즈(Al Diaz)와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가 있었다. 두 사람의 초기 작품은 전문가들조차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실력 면에서 대등했다.

그러나 바스키아는 당대 최고의 예술적 아이콘이었던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등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촘촘한 뉴욕 예술계의 네트워크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반면 알 디아즈는 아웃사이더로 남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알 디아즈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지만, 바스키아의 작품 한 점은 경매에서 1,100억 원이 넘는 거액에 낙찰되며 미국 미술사상 최고가를 경립했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가져와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 그것이 200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예술이 된 역사 역시, 오브제 자체의 탁월함이 아니라 그것을 수용한 집단망의 철학적 합의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한국생산성본부 박성중 회장은 이번 인문학여행의 서두에서 "대전환의 시대, 위기의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정해진 해답이 아니라 융합적 사고에서 나오는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언급했다.

복잡계 물리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당신은 지금 단순히 개인의 기량을 닦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의 성과를 성공으로 승화시켜 줄 조직과 사회의 '네트워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구축하고 있는가.

성공이 나만의 비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메아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리더는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통찰과 영감을 얻게 될 것이다.
구필현 국방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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