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라는 명분 아래 저지른 살인이라면'
400년 이어진 햄릿의 서사, 정면으로 반박
|
오는 3일부터 5일까지 서울 대학로 나인진홀 2관에서 공연되는 '햄릿의 변호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을 현대적으로 옮겨오는 데 그치지 않고 400년 동안 이어져 온 햄릿의 서사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관객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전제를 다시 법정 위에 올려놓으며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살인자에게 서사를 줄 이유가 있는가."
|
엘리트 변호사 포틴브라스의 등장은 햄릿을 심판의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포틴브라스는 햄릿을 살리기 위해 법정에 서지만, 동시에 400년 동안 이어져 온 햄릿의 영웅 서사를 가장 집요하게 해체하려는 인물이기도 하다. 여기에 햄릿이 끝내 지켜내지 못한 연인 오필리어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의 기억과 죄책감을 흔든다.
비극의 주인공이었던 햄릿은 이 작품에서 법정의 피고인이 된다. 관객은 더 이상 그의 고뇌를 따라가는 데 머물지 않고 그가 저지른 살인을 판단해야 하는 위치에 선다. 햄릿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복수는 정의인가, 또 다른 범죄인가. 극은 선악을 쉽게 가르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최종 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
|
현실의 법정과 햄릿의 기억을 넘나드는 구성은 긴장감을 더한다.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는 현실과 과거의 기억이 교차하며 사실과 서사, 죄와 명분, 인간과 범죄자의 경계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해석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정구진 연출은 "햄릿은 분명히 살인자"라며 작품의 출발점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햄릿에게 공감하는 이유를 '서사의 힘'에서 찾는다. 복수라는 명분은 햄릿의 살인을 비극으로 포장했고 자신의 죄를 끝없이 성찰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존재와 자아를 논하는 철학적 독백보다 '사람을 죽인 범죄자'라는 사실이 먼저 다가올 수도 있다. '햄릿의 변호사'는 바로 그 두 시선이 충돌하는 지점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오늘날 콘텐츠는 범죄 자체보다 범죄자의 동기와 상처를 조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이해는 공감으로 이어지고 공감은 때로 죄의 무게를 흐리기도 한다. 이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빌려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수많은 서사까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은 어디까지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이해와 정당화는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무대는 사실주의적 재현보다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프레임은 현실과 기억의 경계를 드러내고, 병동과 구치소를 연상시키는 공간은 햄릿의 내면을 압축한다. 환영처럼 등장하는 오필리어의 움직임과 이미지 중심의 연출은 대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죄책감과 불안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고전의 언어와 현대적 대사가 공존하는 무대는 작품의 문제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
'햄릿의 변호사'는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각색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서사를 다시 법정 위에 세우고 관객에게 최종 판단을 맡긴다. 복수는 정의가 될 수 있는가. 인간은 자신의 죄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살인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는가. 400년 동안 우리는 햄릿의 고뇌와 독백을 기억해 왔다. 이번에는 그의 독백보다 그가 저지른 죄를 먼저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막이 내려도 그 질문만은 객석에 남는다. "살인자에게 서사를 줄 이유가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