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넘게 韓日 100여 차례 오가며 민주화·근대화 기록 남겨
한국인 아내 "내조에만 힘썼던 결혼 생활, 다큐로 보상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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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포토 저널리즘의 '전설' 구와바라 시세이가 26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공유 사무실에서 국내 취재진을 만났다. 자신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얼굴' 공개를 앞두고 이뤄진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사명감이나 책임감보다는 그저 '전달해야 한다'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해왔을 뿐인데, 감사하게도 (다큐멘터리가) 내 인생을 잘 정리해줬다"고 소감을 밝혔다.
1936년 일본 시마네현에서 태어난 구와바라 씨는 미나마타병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으로 1962년 일본사진비평가협회 신인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역사적 격변의 현장이었던 베트남·아프가니스탄·소련(현 러시아)·북한 등을 누볐고 1965년 고단샤 출판사진상과 1971년 일본사진협회 연도상, 1982년 이나 노부오상, 2024년 도몬켄상 등 유수의 사진상을 다수 수상하면서 보도 사진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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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바라 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김포공항에서 서울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은 비포장도로였다. 뿌연 먼지로 앞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라며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변화상을 필름에 담았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의 피·땀·눈물이 어린 모습들은 그야말로 사진 작업의 '보고'였다"고 말했다.
피사체가 있는 곳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직업 정신 탓에 베트남전에서는 지뢰 폭발 등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겪었다. "절친한 동료였던 한국인 사진기자는 결국 지뢰 폭발로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무섭습니다. 반면 한국에서 촬영할 때는 위험하거나 힘들었던 적이 의외로 거의 없었는데,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나 경찰이 자국 기자들의 취재는 제한하면서도 우리같은 외국 기자들은 자유롭게 놔 둔 덕분이죠."
한편 인터뷰에 동석한 아내 최씨는 다큐멘터리 속에서 자신을 "얼 빠진 사진가"라고 소개하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묻는 질문에 "남편이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나서 이전보다 사진을 못 찍게 됐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무조건 참고 지낸 고난의 인생이었다"며 지난 날을 회고한 뒤 "한 편의 영화로 모든 걸 보상받는 느낌이다. 제작진과 기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답해 취재진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