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6월 한일협정 체결을 전후해 일 외무성에 의해 작성된 3건의 내부문서는 “한일청구권협정 2조의 의미는 국제법상 국가에 인정된 고유한 권리인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약속인 것이고, 국민의 재산(개인 청구권)으로 국가의 채무를 충당한 것은 아니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의 한일청구권협정 2조는 ‘체약국 및 국민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고 돼 있고, 일본 최고재판소 등에서 우리 국민의 개인청구 기각의 근거가 되는 규정이다.
일본 정부와 최고재판소는 ‘한일협정에서 한국에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지불하고 청구권이 완전히 해결됐다’는 점을 내세우며 피해보상 요구를 거부해왔다.
일제하 피해에 대한 배상과 관련, 우리 정부는 ▲군대 위안부 ▲사할린 한인 ▲원폭피해자 문제 등 3가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개인적 청구권은 소멸했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14일 최근 국내에 알려진 일본 국내 문서와 관련해서는 “일본 정부가 공개한 문서의 한일청구권협정과 개인청구권간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이장희 한국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5일 이번 문서 공개의 의미에 대해 “1991년 야마이 일본 조약국장의 발언에서 보듯 이미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던 것”이라면서도 “다만 공식적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는 점과 청구권이 인정이 일본 자국 내의 필요성에 따른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지적한 일본 국내 필요성은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선포한 ‘평화선(이승만 라인)’을 넘었다가 나포된 일본 선주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당시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은 청구권 협정 2조에 대해 “국제법상 정부가 국민을 대신해 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주는 외교적 보호권의 소멸만을 뜻한 것으로, 개인청구권은 인정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이어 “독일사례 등에서도 확인하듯 종전 후 국가간 협의에도 불구하고 정부차원의 외교적 보호권(Diplomatic Protection)은 소멸하지만 개인의 청구권은 별개라는 것이 국제법상 확고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문서공개에도 불구, 상황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당시로선 진보적이었던 무라야마 총리가 1995년 일본의 침략에 대해 사죄했지만 그 역시 ‘1910년 한일병탄조약은 도덕적으로 문제는 있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을 뿐”이라며 “일본 정부는 무라야마 담화 이후에도 우리 국민에 대한 배상문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는 1995년 50주년 종전기념일에서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말했다./구원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