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경기 보다 직접 연락해 수술 인연…대표선수만 100여명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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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대표원장 |
“수술의 기준은 나이가 아닙니다. 그것보다 ‘내가 밝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죠. 환자의 의지가 강하고 특별히 건강상의 문제만 없으면 수술이 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대표원장. 국내 노안수술의 선구자이자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박 원장은 최근 99세 초고령 할머니의 백내장 수술에 성공하며 또 한 번 유명세를 탔다.
TV로 올림픽 유도 경기 중계방송을 시청하다 렌즈가 빠져 당황하는 선수를 보고 직접 수소문 끝에 찾아가 무료 수술을 해줄 만큼 그는 열정적이다.
8년 전부터는 성악의 매력에 흠뻑 빠져 환자와 함께하는 각종 공연을 열고 수익금을 소아암 환자나 불우이웃에게 기부하는 활동을 계속해왔다.
다음은 박 원장과의 일문일답.
-최근 99세 할머니의 노안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쳐 주목을 받고 있다. 쉽지 않은 수술이었을 것 같은데?
“수술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그렇게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보통 80대 중반을 넘기면 수술을 안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99세면 굉장히 많은 나이다. 하지만 할머니를 보니 비록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허리도 부실했지만 보고 싶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 며칠 살더라도 밝게 보고 싶다는 마음이 그분의 희망이었다. 그것을 그냥 나이 드셨다고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반드시 그 할머니 눈을 고쳐드리고 싶었다. 현재의 의술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굉장히 발전했다. 백내장 수술 장비 등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최신 장비들과 그간의 수술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충분히 그 분의 눈을 밝게 해 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만약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에 마취 안약만 넣으면 되는 간단한 방법으로 가능하다. 이를 통해 그 분도 모르게 수술이 끝나는 것이다.”
-초고령자여서 수술 자체가 부담되지 않았나?
“환자 본인의 강한 의지가 눈을 뜨게 한 것이다. 의사들은 나이가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을 하다가 자칫 잘못됐을 경우를 생각한다. 그런데 할머니의 수술 의지가 너무 강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힘들긴 해도 이런 분들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봤다. 할머니처럼 의지가 강하면 못 이뤄낼 것이 없다. 이런 부분은 요즘 젊은이들도 배워야 할 모습이라고 본다.”
-국내에서 라식-라섹수술을 최초로 시술했는데 당시 반응은?
“미국과 독일 등에서 연수를 마치고 1989년 처음으로 수술을 시작했다. 당시 언론 등에서는 레이저 시력교정술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봤다. 그 때는 세계적으로 봐도 초창기였던 만큼 이상한 의사로 취급 받기도 했다. 물론 미흡한 점도 있었지만 그런 수술이 라식 수술로 발전됐고 선구적인 안과 의사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이후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라식수술은 근시에게 좋은데 우리나라 국민의 50% 정도가 근시다.”
-아이들 근시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는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2명 중 1명꼴이니 국민병으로 얘기할 정도다. 근시는 시간이 흐를수록 매우 좋지 않게 변하는데 초등학교 4~6학년, 중학교 때가 가장 많다. 이때는 주로 성장할 나이다. 키가 자라는 시기인데 눈알도 길어지니 근시가 심해진다. 최근 시력 저하 방지 얘기를 많이 하는데 우선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영양분을 섭취하는 게 필요하다. 50분 정도 책을 보면 10분 쉬고, 책을 보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의 조명에서 볼 것을 권장한다. 보통 200룩스 정도의 밝기가 적당하다. 그리고 뒤에는 형광등 앞에는 스탠드를 이용하라. 눈으로 직접 오는 빛은 좋지 않고 간접 조명이 좋다.”
-라식수술 하는데 있어 적절한 시기는?
“중·고등학생의 경우 우선 안경을 써야 한다. 렌즈를 사용한다면 소프트렌즈보다 하드렌즈 종류가 좋다. 소프트렌즈는 착용감이 좋지만 산소 투과가 나빠 뻑뻑한 느낌이 있다. 5년 이상 지나면 드라이해져 힘들다. 잠자는 동안 시력을 교정해주는 드림렌즈도 꼭 착용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6개월에 한 번씩 꼭 검사해야 한다. 수술은 성장이 멈춘 후에 해야 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더 이상 시력의 변화가 없어지는 시점인 18~20세 이후에 수술할 것을 권한다.”
-그동안 진료했던 환자들 중 기억에 남는 환자는?
“1998년 열린의사회 회원들과 함께 몽골로 무료진료 봉사활동을 떠났다. 당시 만났던 4살 된 아들과 작은 딸을 둔 엄마 환자를 잊지 못한다. 일가족이 모두 백내장을 앓고 있었는데 당시 몽골의 의술은 열악했다. 그래서 사비를 들여 한국으로 가족 모두를 초대해 수술을 해줬다. 큰 보람을 느꼈다. 특히 아이는 선천성 백내장으로 매우 어려웠던 상태였는데 수술 후 케어를 해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스포츠 스타들의 수술도 많이 했는데 계기가 있었나?
“1986년 애틀랜타 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인 김민수 선수가 준결승 시합 도중 렌즈가 빠진 적이 있었다. TV를 통해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자꾸 경기장 바닥을 보는 게 이상했다. 경기 종료 30초를 남기고 극적으로 역전승을 거뒀는데 착용하고 있던 렌즈가 빠졌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그 때 ‘저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올림픽 선수촌 등을 수소문한 끝에 김 선수를 찾아 무료수술을 해줬다. 김 선수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계속 찾아왔다. 올림픽 대표, 아시안게임 대표, 월드컵 대표…. 나중에는 대한체육회에서 올림픽 출전이 확정된 대표선수로 자격을 제한했다. 배구 국가대표 신진식 선수를 비롯해 모두 100여명 정도의 대표급 선수들을 수술했다.”
-노래하는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노래를 배운 특별한 계기는?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게 벌써 8년이 됐다. 음악을 전공한 아내가 목소리가 좋은 것 같다며 성악을 배워 볼 것을 추천했다. 교회 성가대에서 30년 정도 봉사를 했는데 테크닉적인 문제로 고민이 될 때마다 제대로 노래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중앙대 음악대학 학장이었던 처형의 소개로 이재환 교수에게 처음 레슨을 받았고 지금은 지휘자로 유명한 임한귀 교수에게 레슨을 받고 있다.”
-환자들을 위한 공연을 꾸준히 열고 있다고 들었다.
“그동안 4번의 독창회를 비롯해 아마추어 음악인으로서 여러 차례 무대에 섰다. 자선음악회도 1년에 두 차례 정도 열고 있다. 특히 올해엔 수술한 환자분들을 모시고 음악회를 개최했다. 정성과 최선을 다한 그분들과 함께 하는 자리라 의미가 남달랐다. 내년에는 수술로 해결해 줄 수 없는 실명하신 분들을 모시고 음악회를 하려고 한다. 그 분들에게 수술로 해결해 줄 수 없는 안과의사의 미안한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다.”
-원장님에게 음악이란?
“수술은 도 닦듯이 한다. 잡념이 없어야 하고 굉장한 차분함을 필요로 한다. 성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수술은 답답한 면이 있는 반면 성악을 통해서는 무언가 표출할 수가 있다. 서로 선순환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정서적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스트레스도 분출되는 게 느껴진다. 성악은 죽을 때까지 할 생각이다.”
-인생의 좌우명은“
“최선을 다하자. 겸손하자. 2가지다. 이 신조를 갖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눈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밝은 세상을 안겨 주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픈 바람이다.”
◇He is...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의료원 안과과장 역임
열린의사회 단장으로 몽골, 미얀마 무료진료
대한체육회와 함께 국가대표 수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성균관대학교 삼성의료원 외래교수
Atlanta, Emory Eye center 연수
Bascom-Palmer Eye Institute at the university of Miami 연수
Chicago, Colman-Kraff Eye Institute 연수
유럽굴절수술학회 정회원
미국백내장굴절수술학회 정회원
대한백내장굴절수술학회 정회원
대한안과학회 정회원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 회장
현 아이러브안과 원장, 국제노안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