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국회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무실 앞에서 통진당 관계자와 국정원 직원이 압수수색 전 변호인 입회 여부 문제로 대치 중이다. /사진=허욱 기자
국정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면서 역대 일어났던 내란 및 내란음모 사건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형법 87~91조에서 규정한 내란죄는 크게 내란 예비와 음모, 선동, 선전죄로 구분된다. 이 의원에게 적용된 내란음모가 내란을 도모할 공범을 모아 통모 내지 합의하는 인적준비 과정이라면 내란 예비는 내란을 일으키기 위해 범행도구를 준비하거나 장소를 물색하는 등의 물적준비 행위다.
형법상 내란죄는 최고형인 사형 또는 무기징역·무기금고로 처벌하도록 법정형이 정해져 있다. 우리 형법은 또 내란예비와 음모, 선동, 선전죄의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역대 국내에서 벌어졌던 내란 관련 사건은 독재정권이 정권을 유지하고 여론을 선동하기 위해 조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1980년 있었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 대표적이다.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김 전 대통령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한 사건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사건으로 군사법원에 넘겨져 같은 해 9월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이후 미국 측이 전 전 대통령의 방미를 허용하는 조건으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구명을 요구하면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1995년 ‘5ㆍ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2003년 10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 이듬해인 2004년에 무죄로 누명을 벗었다.
1960~1970년대 대표적인 공안사건으로 꼽히는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건’도 내란음모죄가 적용된 사례다.
1964년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인혁당을 ‘북괴의 지령을 받은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규정하고 관련자 13명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로부터 10년 뒤인 1974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는‘인혁당 재건위’를 민청학련의 유신반대 투쟁 배후세력으로 지목하고 내란예비음모, 내란선동 등 혐의로 180여명을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했다. 대법원은 이듬해인 1975년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을 확정했다. 이들은 확정판결을 받은 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형집행을 받았다.
당시 재판에 넘겨진 주요 인사로는 시인 김지하씨와 이철 전 철도공사 사장, 유인태 민주당 의원 등이 있다. 이들은 이후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 사건을 조작극이라고 규정하면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밖에도 김 전 대통령에게 내란음모죄를 적용한 전 전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1997년 내란죄로 기소됐다. 이들은 1심에서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이밖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수괴 미수 혐의로 기소된 사건 등이 국내 대표적 내란사건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