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1.21사태, 10.26사태 등 역사적 사건 다수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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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당선인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는 임기 시작인 5월 10일 개방해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며 “본관, 영빈관을 비롯해 최고의 정원이라 불리는 녹지원과 상춘재를 모두 국민들의 품으로 돌려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70여 년 권력의 심장부 역할을 해 온 청와대는 공원화돼 국민들에게 완전 개방될 예정이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는 일제 강점기인 1937년 5월 7일 조선총독관저가 처음 들어섰다. 8·15 광복이후 1945년 9월 8일 주둔군 사령관으로 서울에 도착한 존 하지 중장이 1948년 8월 24일 한국을 떠날 때까지 3년여 동안 머물렀다.
이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경무대’로 이름 붙여 살다 4·19혁명으로 1960년 4월 28일 이곳을 떠났다.
‘푸른기와 집’이라는 뜻의 청와대 명칭은 이후 집권한 윤보선 전 대통령이 처음 사용했다. 윤 전 대통령은 1960년 당시 4·19 혁명 분위기 속에 경무대가 지닌 부정적 인식을 고려해 이름을 바꿨다.
이후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곳을 사용하면서 청와대는 명실상부한 ‘권력의 심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것이 1968년 1월 12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대원 31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 살해를 목표로 청와대 뒷산으로 침투한 이른바 ‘1·21 사태’다.
1979년 10월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 인근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고 숨지는 ‘10·26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에도 국가의 크고 작은 고비들 때마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 한복판에 자리를 해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청와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로 위기를 맞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광화문 촛불집회로 탄핵을 맞았다.
정권을 이어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이른바 ‘구중궁궐’ 청외대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광화문 시대’를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윤 당선인이 ‘청와대 대통령 시대’의 막을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