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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제’ 김가영의 고진감래 “당구 덕에 스펙타클한 내 인생”

[인터뷰] ‘여제’ 김가영의 고진감래 “당구 덕에 스펙타클한 내 인생”

기사승인 2022. 05. 0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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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김가영 인터뷰
김가영 선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cjswo2112@
인천 정재호 기자 = “포켓볼로 세계 우승 몇 번을 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요.”

‘당구 여제’ 김가영(39·신한금융투자)이 인터뷰 마지막에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는 지금 누구보다 행복한 당구선수이다. 지난 3월말 시즌 상대 전적 3전 전패를 당했던 ‘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32·블루원리조트)를 꺾고 마침내 여자프로당구(LPBA) 왕중왕을 차지하면서 커리어의 정점에 섰다.

김가영은 당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선수다. 2004년과 2006년 한국 당구선수로는 최초로 나인볼(포켓볼) 세계 챔피언에 올랐던 그는 2012년 10볼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개인 통산 3회 및 포켓볼 두 종목(9볼·10볼) 세계 챔피언이라는 신기원을 이뤘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완전히 다른 3쿠션 선수로 전향한 뒤에는 LPBA에서도 왕중왕에 올라 ‘여자 3쿠션 월드챔피언’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인간 김가영은 본인 스스로가 아버지를 닮아 그렇다고 할 만큼 성격이 강하다. 또 가식이 없고 진솔하며 솔직한 사람이다. 말솜씨도 이미지만큼 거침이 없지만 아버지를 얘기하면서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을 훔치는 여린 면모를 지녔다.

이제껏 김가영이 걸어온 길은 ‘고진감래’를 떠올리게 했다. 행복한 ‘당구 여제’가 있기까지 치열하게 살아왔던 과정들을 인천 버호벤캐롬클럽에서 김가영을 만나 들어봤다.

당구 김가영 인터뷰
김가영 선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cjswo2112@
-왕중왕이 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일단 주변분들, 가족들이랑 많이 도와주셨던 분들에게 인사드리러 다녔다. 인터뷰도 했었고 간혹 행사 같은 것도 했다. 짬짬이 공도 치면서 주변분들, 식구들이랑 시간을 보냈다. 컨디션은 아주 좋은 상태다. 시합이 끝나면 컨디션이 좋아진다.”

-평소 하루일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일정하지는 않다. 그래도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웨이트나 유산소 등 체력훈련을 한다. 몸이 안 좋을 때는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도 받는다. 나머지 시간은 거의 당구 기술훈련이다. 별 일이 없으면 8시간 정도다. 즉 하루 10시간은 당구에 투자한다. 다행히 당구로 인한 큰 부상은 없었다. 외국생활을 오래하면서 현실적으로 안 다치기 위해서 엄청 신경을 많이 쓰고 살았다. 조금만 아프면 자세 바꾸고 반복적으로 자세를 잡다 보니까 목이나 어깨 쪽이 살짝 결리는 측면도 있다. 당구는 편측 운동이고 한쪽으로 몸이 틀어진다. 좋은 정보를 입력시키고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당구도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다.”

-LPBA 월드챔피언십 왕중왕전 우승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큰 시합이든 작은 시합이든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은 같다. 다만 운이 좋았고 그게 큰 대회였을 뿐이다.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을 많이 했다. 큰 우승이든 작은 우승이든 다르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작은 대회라고 준비를 소홀하지 않고 큰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애써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다.”

-포켓볼과 3쿠션을 동시 제패했다.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건 없는 것 같다. 포켓볼을 칠 때도 어느 우승 하나 쉽지 않았다. 올라가는 것도 어려웠고 지키는 것도 그만큼 어려웠다. 그 안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꾸준하게 노력했었다. 3쿠션은 어렵기도 했지만 올라오는 재미가 있었다. 포켓볼은 한동안 지키는 입장이었고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계속 배워나가고 다시 해나가고 기존의 있던 것들을 지우고 다시 쓰고 하고 있다. 비어 있는 걸 채워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재미있다. 그 자체로 지금도 재미를 느낀다. 재미가 원동력인 것 같다.”

-포켓볼과 3쿠션은 완전히 다른 당구인데
“일단 가장 다른 점은 포켓볼은 목적구(맞히는 공) 위주다. 3쿠션은 수구(치는 공) 컨트롤이 위주다. 3쿠션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목적구를 쫓아갔다. 3쿠션은 수구를 따라가야 되는데 평생 목적구를 봤으니까 그걸 따라가는 습관이 있었다. 습관은 나도 모르게 나오는 거니까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렇다고 다 나쁜 건 아니다. 포켓볼로 들인 좋은 습관도 많이 있다. 큐로 공을 치는 것. 기본적으로 자세든, 스트로크든 좋은 습관들을 갖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된다. 그걸 어떻게 잘 접목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어떻게 소화시킬 것이냐는 다른 사람들이 가르쳐주지 못하는 나의 숙제다.”

-많이 알려진 일이지만 포켓볼에서 3쿠션으로 돌아선 결정적 계기는
“프로가 생긴다고 한 번 초청선수로 참가해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고 고민하다가 한번 정도는 해보겠다고 참가했는데 연맹(대한당구연맹)에서 제명을 당하게 됐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냥 처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것 같다.”

-수많은 우승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이 있다면
“2004년 첫 포켓볼 세계선수권대회다. 첫 세계챔피언 타이틀이었다. 힘들었을 때 우승이라 의미가 있다. 2003년 US오픈에서 준우승할 당시 여러 모로 특히 경제적으로 최악이었다. 미국에 살면서 프로 자격증을 따려고 하던 시기인데 수중에 50만원 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준우승하는 바람에 숨통을 텄다. 그렇게 몇 달 생활비를 벌고 2004년 세계선수권과 US오픈을 우승했다.”

-혼자 아무도 없는 미국에 가는 결정조차 쉽지 않은 일인데
“미국에는 연고도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만으로 갈 때도 그랬다. ‘어디 가서 굶어 죽기야 하겠나’는 마음이었다. 그냥 아무 당구장이나 밀고 들어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도전해보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두 번 다 외국으로 나갔다. 사실 무섭기도 했다. 미국에 가면서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몸에 이름이나 생년월일을 문신으로 남겨놓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실제 타투는 없다.”

-그때가 당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인가
“사실 경제적인 문제는 다 버틸만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게 훨씬 괴로웠다. 여자 혼자였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원치 않게 정치적인 일에 휘말리기도 했다. 예를 들면 아시안게임을 나갔는데 내가 대만에 살 때다. 당시 한국과 대만 선수가 붙는데 통역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원래는 대만 선수가 이기고 있었는데 통역한 순간을 기점으로 한국이 역전해서 승리했다. 그 일로 대만에서 시합 출전 정지를 당했다. 그들의 명분은 당연히 통역 때문이 아니다. 피해가는 행동을 했다, 인성이 안 좋다, 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등 이런 식으로 대만 신문에 났다. 그렇게 대만에서 출전정지 2년을 당했다. 이런 일들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오래 선수생활 하면서 억울한 일들이야 얼마나 많았겠나.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너무 많이 연연해하지 않으려고, 에너지를 쏟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조금 더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고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일에 더 노력을 쏟게 되는 것 같다.”

-당구를 하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아버지다. 아버지가 되게 강하신 분이다. 어떻게 딸한테 당구를 가르칠 생각을 했느냐는 이런 말씀들을 많이 듣지만 아버지는 내게 그런 뉘앙스를 한 번도 비치신 적이 없다. 당구는 스포츠이고 남녀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포츠 중 하나라고 가르치셨다. 3쿠션은 안 되지만 포켓볼은 남자 선수들하고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게 만들어주셨다.”

-아버지와 에피소드를 꼽는다면
“10대까지는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고 싫었다. 당구시키겠다고 96~97년 이때부터 웨이트를 시키셨다. 당시 딸을 당구선수 만들겠다고 웨이트를 시키는 아빠는 이상한 아빠였다. 그러다 아빠한테 고마움이 생기기 시작한 게 첫 세계선수권대회부터다. 오스트리아에서 했는데 우승하고 전화해서 ‘세계에서 당구 잘 치는 여자가 누구냐’고 물어봤다. 아버지가 ‘우리 딸’이라고 했다. 그렇게 한참 통화를 하는데 아버지가 ‘한국 챔피언은 내가 만들어준 거지만 세계 챔피언은 네가 한 거다’라고 하셨다. 그때는 그 얘기가 그렇게 고마운 건지 몰랐다. 20대 후반이 되고 나서 돌이켜보니 아빠가 내 공을 많이 인정해줬구나, 대만에서 미국에서 혼자 고생한 거 아빠가 인정을 해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 표현을 못 한다. 한 번도 엄마한테도 힘들다고 한 적이 없다. 밝고 늘 웃는 가족 분위기이다. 엄마는 완전 낙천적이다. 내가 아버지를 닮았고 여동생은 어머니의 성향을 닮았다.”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지금 시점의 아버지는 친구 같다. 직설적이다. 시합을 보러 오시면 아버지는 중간 브레이크 타임 때 잔소리를 한다. 어릴 때 엄한 아버지였지만 약속을 어기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해라 마라’ 하는 것도 미성년자까지만 이라고 했고 딱 그랬다. 그 이후로는 내가 무슨 결정을 하고 뭘 하든 전혀 터치를 안 하셨다. 화장이라도 바르면 세수하라고 하고 민소매 못 입었고 붉은 색깔 옷도 못 입게 하던 아버지가 고교 졸업하자마자 민소매에 가슴이 파인 옷에다 노란 염색까지 한 나를 보고 한 마디도 안 했다. 돌아보면 어릴 때 엄했던 게 아버지의 책임감이었던 것 같다. 당구도 그렇다. 아버지가 어떻게 동냥으로 얻어 와서 그렇게 나를 가르치신 거다. 베이스는 만들어놨으니 외국 간다고 해도 전혀 말리지는 않았던 거다. 가면 독기 있게 할 거라는 걸 알고 계셨다. 나는 나를 못 믿었어도 아버지는 나를 믿었던 것 같다. 19살 딸을 보는 엄마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후에 물어보니 아버지는 그냥 잘할 줄 알았다고 했다.”

당구 김가영 인터뷰
김가영 선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cjswo2112@
-요즘 프로스포츠로서 당구 인기 높다. 체감하나
“폭발적이지는 않은데 전에 비해서는 많이 늘어난 것 같다. 확실히 요즘 주변에서 TV에서 잘 봤다고 말씀들을 많이 해주신다. 지인들에게 전화도 많이 받고 그렇다.”

-선수로서 다음 목표는
“6월에 시즌 시작되는 걸로 알고 있다. 3쿠션은 아직 초짜라서 답이 딱 안 나온다. 사실 없다. 끝이 어디까지인지 몰라서인 때문이다. 그냥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가 나도 궁금하다. 굳이 있다면 작년 시즌 에버리지를 1점 정도 쳤다. 올해는 1.2점 정도로 늘리는 게 목표다. 거창한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보겠다.”

-실력만큼 외모로도 주목 받는데
“좋게 봐주시면 감사한데 그냥 뭐 해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외모에 대한) 프라이드는 없다(웃음).”

-당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 영향으로 시작했다. 이기는 재미가 있었다. 그냥 동네 아저씨들 이기는 재미로 하게 됐다.”

-어릴 때는 어떤 아이였나
“평범했던 것 같다. 공부도 평범했고 성격은 지금보다는 유순했다. 장난기는 많은 아이였던 것 같다. 피아노를 좋아했었고 순정만화 좋아하고 그랬다. 빌려온 만화책을 하도 찢어서 집에서 많이 물어줬다.”

-평소 즐겨하는 취미는
“디지털 피아노가 집에 있는데 치는 걸 좋아한다. 여름에는 수상스키, 겨울에는 스키를 탄다. 외부활동을 좋아한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다니기도 한다. 외국에서는 스쿠버다이빙이 저렴하다. 보통 1년에 6개월 이상 외국생활을 했었는데 최근 3년 동안은 코로나19 때문에 외국에 못 나갔다.”

-당구 선수가 아닌 인간 김가영으로서 다음 인생 목표가 있다면
“재미있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연애는 8년째하고 있는데 기간 같은 것에 서로가 구속받지 않는 스타일이다. 어느 순간 둘 다 원하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될 것 같다. 당장 계획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김가영에게 당구란
“(한참을 생각했다.) 내 인생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요소다. 이것 때문에 내 인생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긴 외국생활을 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슬픈 일도 있었고 힘든 일도 있어서 내 인생이 더 스펙타클했다.”

-끝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포켓볼 칠 때는 좀 건방졌었다. ‘내가 제일 잘해요, 재미있을 거예요’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못하는 경우가 드물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3쿠션을 칠 때는 잘 보이고 싶은데 잘하는 거 보여주고 싶은데 부족하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다. 늘 재미있는 경기를 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포켓볼에서 최고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지켰듯이 늘 재미있는 경기를 하고, 할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할 테니 지켜봐달다. 지금 한국에서 선수하는 동안 가장 영광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포켓볼로 세계 우승 몇 번을 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

당구 김가영 인터뷰
김가영 선수. /김현우 기자 cjswo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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