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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지역 독립운동의 산실 ‘예산 제일교회’... 80년 만에 역사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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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태 기자

승인 : 2023. 01. 31. 09:57

목회자들의 민족정신에서 ‘3·1 운동’ 점화
일제강점기 비밀결사대 ‘예농속회’가 실체
예산지역 독립운동의 산실...과거사정리위원회가 80년 만에 역
1927년 예산 제일교회 모습.
예산지역 독립운동의 산실...과거사정리위원회가 80년 만에 역
서영석 협성대학 교수
일제강점기 기독교대한감리회(예산제일교회·예제회)가 충남 예산지역 독립·민족운동의 산실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원문사료를 과거사위원회가 80년만에 찾아내고 KBS가 방영한 것을 계기로 예산지역 독립운동사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예산지역 독립운동의 발원지가 예산제일교회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점에서 지난 28일 감리교 신학대학 소요한 교수와 협성대학교 서영석 교수가 '예산지역 민족운동과 예제회'라는 주제로 연구발표회를 최재구 예산군수를 비롯한 지역 기관단체장, 군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 교회 예루살렘성전에서 가졌다.

'예산지역 독립운동 산실, 예제회'라는 주제 발표에 나선 소요한 교수는 "예제회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독립운동의 흔적은 있었어도 명확하게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었지만,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교회를 담임했던 15명의 목회자들 중 상당수가 민족의 독립을 주도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들 중 한태유(3대~10대) 담임목사는 3.1 독립운동 시기에 대부분 선봉에 서서 예산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축을 이뤘다는 것이다.

소 교수는 "3.1 독립운동의 예산지역 최초 봉기는 3월 3일 예산 읍내에서 전개됐는데, 이 때 8대 이명제 담임목사가 이 운동에 참여한 흔적이 발견됐다"며 이 목사는 상해 임시정부 경성 조선독립운동 지부와 연결돼 예산지역의 독립운동 전달책을 맡아 선전책임자로 활약했다는 것이다.

이어 "기미독립선언서의 의미가 대중과 어린 학생들에게 전달된 것은 '묵묵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희생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자주 독립운동의 연원(淵源)이 서울· 수도권이 아닌 충남 지역의 이곳에서 자주적으로 펼쳐진 것"이라며 "이를 주축으로 학생결사 운동으로 번져 윤영원, 최경용, 이민구 등과 함께 9명의 비밀결사조직인 '예농(예산)속회'가 결성되고 이들은 △조선민족정신을 잊지 말 것 △조선어를 연구, 사용할 것 △조선민족의 단결을 굳게 할 것 △비밀을 엄수하고 동지를 많이 모을 것 △조선민족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민족의식을 앙양할 것 등의 5개 강령으로 민족독립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공동연구자인 협성대학교 서영석 교수도 "충남 예산에도 1927년 11월 '자유와 평화, 인권'의 기독교 이념을 앞세워 항일운동에 불을 지피면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는 기폭제가 됐다" 며 민족주의 세력들이 결집해 창립한 항일단체인 '신간회(新幹會) 기록을 주목했다.

예산제일교회 장준태 목사는 "우리 교회의 선배들 가운데서 민족운동을 했다는 분들이 늦게나마 기록을 통해 세상에 밝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교회가 독립운동의 산실이 됐다는 것은 예산군민들의 자긍심이 될 것"이라며 "이들에게 독립유공자로 추서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관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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