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는 웬만해서는 당정 최고위급의 부패 문제와 관련한 내용을 대대적으로 자세하게 보도하지 않는다는 금기 사항이 있다. 아마도 자신들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18일 이런 원칙을 과감하게 깼다. 이른바 신4인방으로 불리는 저우융캉(周永康·73) 전 정치국 상무위원, 보시라이(薄熙來·66) 전 충칭(重慶)시 서기, 링지화(令計劃·59) 전 중앙통일전선공작부장, 쉬차이허우(徐才厚·고인)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등의 부패에 대해 이례적인 특집 보도를 통해 솔직하게 시인한 것. 더구나 강력한 비판을 통해 당정 최고위층 역시 인간인 만큼 부패해질 수 있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인정했다.
저우융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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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패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 최근 각종 사건, 사고로 촉발된 민심 이반을 희석시킬 희생양이 되고 있다./제공=중국 국영 중앙방송(CCTV) 화면 캡처.
런민르바오는 이날 보도를 통해 절묘한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전 가족이 화목한 모습으로 함께 찍은 사진을 의미하는 이른바 취안자푸(全家福)에 빗대 취안자푸(全家腐), 다시 말해 온 가족이 부패했다는 성어까지 탄생시킨 것. 이는 아마도 정치적으로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소리를 듣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와 같은 이른바 태자당들을 겨냥한 경고라고 해도 좋다. 앞으로 비리와 부패를 저지르는 당정 고위층이나 원로의 후손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선대의 업적이 대단하다고 해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삼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런민르바오가 이례적으로 당정 최고위급들의 비리를 인정하고 비판한 것은 최근 톈진(天津) 폭발 사고로 본격적으로 촉발되기 시작한 민심 이반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이미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당정 최고위급들을 다시 한 번 희생양으로 삼아 민심을 다잡아보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 평론가 Q 모씨가 “지금 여러가지로 상황이 좋지 않다. 당정 최고 지도부에 대한 원망도 대단하다. 하지만 이렇게 돼서는 곤란하다. 누군가가 대신 희생양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로 보면 크게 무리한 관측도 아닌 듯하다.
하지만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10월 1일의 국경절보다도 더 성대하게 치러질 것으로 예상됐던 9월 3일의 항일전쟁 및 반파시즘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의 축하 분위기가 이미 식어버렸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또 획기적인 민심 위무책이 나오지 않으면 당정 최고 지도부의 권위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도 줄기차게 나돌고 있다. 런민르바오의 보도는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을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