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 정치, 경제 일선에서 물러나면 거의 뒷방 노인이 되기 십상이라고 해야 한다. 찾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쓸쓸하게 노년을 보내는 것이 하나 이상하지 않다. 이 점에서는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올랐던 이들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이 사회 활동 역시 크게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과거의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은퇴 후에 더 열심히 활동을 하는 원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 사장을 8년이나 지낸 사오화쩌(邵華澤·82) 전 사장이 아마 대표적인 인물이 아닌가 보인다. 현역 시절 못지 않은 왕성한 활동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당 원로로까지 불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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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기관지 런민르바오 사오화쩌 전 사장의 모습. 노년에 들어 젊은 시절 때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
언론계 소식통의 최근 전언에 따르면 그는 우선 후학들을 위해 고향인 저장(浙江)성의 명문인 저장농림대학 인문학원 명예원장을 맡으면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종종 언론 분야 종사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관련 강의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노구에도 1년에 몇 번은 저장 행에 나서고도 있다고 한다.
한국의 기자협회와 신문방송편집인협회를 합친 것과 비슷한 기구인 중화전국신문공작자협회의 명예회장의 자리도 그가 아직 현역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나 싶다. 이 협회는 회원만 30만 명을 헤아리는엄 청난 조직인 만큼 행사도 적지 않으나 그는 웬만하면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2년 전만 해도 베이징대학 신문방송학원 원장을 지낸 이력을 살펴봐도 그가 어느 정도로 은퇴 후에 부지런하게 생활했는지는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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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에 글을 쓰고 있는 사오화쩌 전 런민르바오 사장./제공=검색엔진 바이두..
그는 중국 10대 서법가로 불리는 대가답게 작품 활동도 멈추지 않고 있다. 하루에 최소한 2-3시간은 정신을 가다듬고 혼을 불어넣는 글씨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작품 값이 비싼 작가로 유명하나 다작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평소 신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부총리급으로 퇴직한 원로인 탓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전혀 없다. 여유자적하게 보내도 누가 뭐라 그럴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젊은 시절 못지 않게 치열하게 살고 있다. 원로로서의 전범을 보여준다고 주변에서 하나 같이 입을 모으는 것은 다 까닭이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