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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는 어떨까? 지난 26일 ‘아투 여기자’가 국내 유일의 여성 전용 교정기관인 청주여자교도소의 일일 교도관으로 나섰다. 때로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수용자들을 휘어잡고, 때로는 둘도 없는 단짝친구처럼 친근하게 수용자들의 손을 잡아주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각오 단단히 하세요. 긴장 풀고 계시면 안 됩니다.”
엄중한 경고와 함께 교도관복을 받아들자 비로소 교도소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난폭한 수용자에게 폭행을 당하면 어쩌나’ ‘탈주를 결심한 수용자에게 인질로 잡히는 거 아닐까’ ‘패싸움이 일어나면 어떻게 제압해야 할까’ 등 온갖 불안한 상상들이 뇌리에 스쳤다.
빳빳한 셔츠와 익숙하지 않은 넥타이, 넉넉한 점퍼에 ‘교도’ 계급장까지 모두 착용한 뒤 거울을 보니 어딘가 어색한 모습에 웃음이 났지만, 어쩐지 평소보다 허리를 더 곧게 세우고 각 잡힌 자세로 서게 됐다.
오전 8시, 청주여자교도소의 아침이 밝아오면 교도관들의 하루가 분주하게 시작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수용자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각 거실마다 필요한 물품이나 요청사항 등이 적힌 보고문과 서신들을 걷고, 수용자 앞으로 도착한 서신을 전달해주는 것.
이후 일부 수용자들은 제과제빵·바리스타·자동차 시트 제작·화훼 장식·한지 공예 등 다양한 작업장으로 이동하고, 미지정사동의 수용자들은 거실에 남아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정해진 일과에 맞춰 움직인다.
기자가 환복을 마치고 나왔을 때는 마침 4수용동 재소자들이 운동을 하러 나온 참이었다.
갑갑한 거실에서 벗어나 콧바람을 쐬는 것이 여간 즐겁지 않은 듯, 수용자들은 삼삼오오 손을 잡고 수다를 떨며 운동장을 거닐었다. 운동장 한 켠에 피어있는 꽃향기를 맡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고, 교도관이 반가운 듯 달려와 팔짱을 끼거나 품에 안기는 소년수도 눈에 띄었다.
낯선 얼굴이기 때문일까. 몇몇 무리들은 기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쑥덕대기에 바빴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바짝 얼어붙어 있던 기자에게 다가와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수용자들은 모두 거칠고 험악할 것이란 예상은 교도관 체험을 시작한 지 5분 만에 완전히 빗나갔다.
옆에 있던 교도관에게 “수용자들이 나를 신입 교도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고 말했지만, “이미 다들 진짜 교도관이 아닌 걸 눈치 채고 있을 것”이란 냉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의 어설픈 모습에 대한 자괴감이 드는 한편, 실제 교도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해코지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수용자들에게 내심 고마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다른 수용동의 재소자들을 데리고 나온 교도관들은 목욕탕에서 수용자들끼리 싸움을 벌인 일, 보호실에 있는 수용자 한 명이 밤새도록 소란을 피우는 통에 다른 수용자들까지 밤잠을 설친 일 등 이날 교도소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대부분의 싸움은 “왜 내 샴푸를 쓰냐”와 같이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된단다.
물론 운동장에서도 언제든지 예상치 못한 사고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700여명의 수용자들이 골고루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각 수용동과 작업장별 운동 시간을 체크하고 인솔하는 것 또한 교도관의 임무이기에, 수용자들을 감시하면서도 틈틈이 시계를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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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자실에 있는 교도관은 그야말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수용자들이 구입한 생필품들과 각종 처방약들, 외부에서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거실별로 정리하면서 수용자들로부터 수시로 걸려오는 인터폰에도 응답해줘야 했다.
“아직 목욕을 못 했다” “텔레비전이 안 나온다” “몸이 아프다” 등의 사소한 내용들이었지만, 수많은 수용자들의 고충을 일일이 들어주려니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그 옆에서 또 다른 교도관은 수용자 한 명을 앞에 앉혀둔 채 면담 중이었다. 업무량은 넘치지만 이를 해결할 교도관의 숫자는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일당백’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기도 했다.
걸핏하면 행패를 부려 독거실에 격리된 수용자로부터 인터폰이 왔을 때는 특히나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수용자였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하던 일을 멈추고 해당 수용자의 거실로 직접 찾아갔다.
인터폰을 한 이유인즉슨, 오전에 한 교도관이 다른 수용자에게 말한다는 걸 실수로 자신의 거실로 연락한 점이 못내 불만스럽다는 것이었다. 교도관이 “이미 오전에 사과했는데 왜 또 지금 불러서 화를 내는 거냐, 그래서 어떻게 해달라는 거냐”며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자 수용자도 의미불명의 괴성을 지르며 대들었다.
하지만 교도관이 “미안하다고 다시 한 번 사과할 테니 기분 풀어라”며 살살 달래자, 수용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물러섰다. 겁을 먹어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한 걸음 뒤에 물러서 있었던 기자와는 전혀 다른,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쓸 줄 아는 베테랑 교도관의 모습이었다.
사실 수용자들이 종종 터무니없는 이유로 인터폰을 하거나 지나가는 교도관을 불러 세우는 것은 정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잠깐이라도 더 교도관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일부러 눈에 띄는 행동을 한다는 것.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릴 교도관들의 고충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도, 그런 식으로라도 사람과 접하고 싶어 하는 수용자에 대해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평범하게 어울리는 방법을 알지 못해 범죄에 빠져들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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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바늘 하나라도 개수가 맞지 않는다면, 그 즉시 ‘비상’이 걸린다. 사라진 바늘을 찾을 때까지 그 누구도 쉴 수 없다. 다행히 이날은 모든 물품의 개수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오후 5시께, 전체 수용동의 인원 점검을 끝으로 청주여자교도소에서의 교도관 체험이 무탈하게 마무리됐다.
불과 반나절 동안 교도관의 업무를 살짝 맛봤을 뿐임에도 긴장이 풀리자 온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모든 교도관들이 오후 내내, 단 5분도 편히 쉬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거실, 운동장, 작업장, 복도, 목욕탕 등 수용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떤 장소에서든지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니 쉴 틈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심지어 저녁 식사 후에는 수용자들과의 개별 상담까지 진행한다는 교도관들이 경이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남다른 사명감과 수용자들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결코 버틸 수 없을 만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극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수년간 근무한 한 교도관은 “처음에는 수용자들의 죄명이 궁금해서 일일이 찾아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부러 모른 채 넘어가려 한다. 죄명을 알게 되는 순간 수용자들에 대한 편견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한 번 편견이 생기고 나면 진심으로 수용자들을 대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없다면 이곳에서 일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용동을 총괄 관리하는 교감 곽모 계장은 “좋은 시설과 교육 환경 등을 마련해줘도 모든 수용자들이 완벽하게 교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가끔 우리의 정성과 배려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수용자들을 만나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며 “하지만 결국 이곳에 있는 모든 수용자들을 ‘미워도 어쩔 수 없는 내 새끼’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게 되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