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피리'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다소 황당하고 비약이 심한 이야기가 환상적이고 흥미진진한 오페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작곡한 음악 덕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에는 고전시대 오페라의 우아한 서정성과 눈부신 기교, 소박한 독일 징슈필의 정서, 당시 유행하던 이국적 요소에 박진감 넘치는 리듬까지, 마치 유작이라는 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 모차르트 오페라의 정수가 담겨있다.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 서울시오페라단의 '마술피리'는 이러한 특징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연출이 작품의 많은 것을 좌우하는 오늘날, 오페라에서 새삼 성악을 비롯한 음악의 힘을 느낀 공연이었다.
최근 대한민국 성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들과 중견, 새롭게 떠오르는 신예 성악가들이 골고루 캐스팅 돼 화제를 모은 이번 오페라에서 이병욱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상당히 여유로운 박자와 유연함으로 무대 위 성악가들과 합을 맞춰나갔다. 이병욱과 경기필은 세심하고 매끄러운 연주로 성악가들의 노래를 잘 뒷받침했으며 귀에 거슬리는 부분이 한군데도 없었을 정도로 매끄럽고 조화로운 연주를 들려줬다. 특히 '마술피리'가 가진 유쾌함과 흥겨움 뿐 아니라 작품 안에 녹아 있는 고귀하고 우아한 선율 역시 놓치지 않고 그려냈기 때문에 더욱 탁월한 음악성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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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마술피리' 중 한 장면./제공=세종문화회관
이러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력에 화답하듯, 출연 성악가들 모두 절창을 들려주었다. 이들은 성악공연에 취약한 극장의 음향시스템에도 아랑곳없이 풍부한 성량과 아름다운 가창으로 공간을 가득 채웠다. 타미노 왕자 역의 테너 김건우는 왕자의 품위 있는 음색과 사랑에 빠진 청년의 열정을 동시에 표현하며 오페라의 초반부를 견인했다. 파파게노를 맡은 김기훈은 재작년 카디프콩쿠르 아리아부문 한국인 최초의 우승자로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바리톤이다. 김기훈은 압도적인 성량과 능청스러운 연기로 극의 희극성을 최고치로 끌어올렸고 종횡무진 작품의 감초로 멋진 활약을 보여줬다.
소프라노 황수미는 맑고 청순한 음색이 파미나 그 자체였다. 거기에 뛰어난 표현력까지 겸비해 근래 보기 드물게 완벽한 파미나를 선보였다. 타미노, 파미나, 파파게노의 호연과 빼어난 가창이 이어지는 가운데 등장한 신인 소프라노 김효영은 두 번의 밤의 여왕 아리아를 훌륭하게 소화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두 번째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나를 불타게 하네'는 정확한 음정과 발성을 바탕으로, 음반을 듣는 것 같은 기교와 폭발적인 분노를 노래해 객석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날 성악가들은 주·조역을 가릴 것 없이 적극적인 연기와 좋은 노래를 들려줬는데 파파게나를 깜찍하게 연기한 소프라노 김동연을 비롯, 자라스트로 역할의 베이스 이준석의 중후한 저음과 모노스타토스를 맡은 테너 김재일의 익살맞은 악역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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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마술피리' 중 한 장면./제공=세종문화회관
이처럼 흠잡을 곳 없던 성악가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무대디자인이었다. 삼각 피라미드를 표현하기 위한 제단의 계단은 지나치게 높고 경사가 심해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불필요하게 무대를 가득 채운 피라미드 계단 때문에 가뜩이나 긴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무대는 주로 가로로 밖에 활용되지 못했다. 평면적인 무대가 비좁게 느껴졌다. 그러나 작품 초반 보여준 프로젝션 매핑 등 수준 높은 첨단 영상은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박혜진 서울시오페라단장이 "3D 영화를 보듯 현실감 있는 오페라를 보여드리겠다"고 밝힌 대로였다.
1985년 설립된 서울시오페라단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고유한 개성을 살리며 지속돼 왔다. 코로나19로 고통 받던 지난 3년간은 서울시오페라단의 가장 큰 위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그 위기를 지난 가을부터 서서히 극복하면서 이번 봄 서울시민이 오페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다시금 활짝 열었다. '마술피리'는 서울시오페라단의 부활과 건재함을 알리는 반가운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