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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것은 1900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였다. 동양학을 공부한 뒤 한국의 서지학을 정리한 모리스 쿠랑의 기록에서도 직지를 찾을 수 있다. 이후 경매에 나온 직지는 골동품 수집가 앙리 베베르의 손에 넘어가게 됐고, 그가 사망한 뒤 1950년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한동안 도서관 수장고 보관돼 있던 직지가 다시 주목받은 건 1972년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가 자료를 분류하고 해제하던 중 직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제1회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해 열린 전시에 소개하면서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당시 프랑스 국영 제1TV는 직지가 "구텐베르크의 발명보다 78년 앞선다"며 "우리는 금속활자의 영광을 이제 동양의 한 나라에 돌려줘야 할 것"이라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지는 오랜 기간 수장고에 있어야만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충북 청주시 등 여러 기관이 직지의 국내 전시를 추진했으나 번번이 성사되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가 공개된 바는 없지만 프랑스 측은 압류 가능성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2021년 황희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지의 한국 전시를 요청했을 때 프랑스 측은 압류 우려가 없다면 검토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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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전시는 직지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측이 협력한 부분은 눈여겨볼 만하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금속활자본이 간행된 다음 해인 1378년 펴낸 목판본 직지 관련 자료와 백운 경한 스님 어록 등을 도서관 측에 제공하고 번역도 지원했다. 직지의 편찬 배경과 한국 불교의 인쇄 문화유산을 주제로 한 콘퍼런스도 현지에서 열린다. 앞으로도 다양한 협력을 기대해 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