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은 고난과 형극의 길...후배들 위해 40년 경험 담담하게 담아"
고속철도, 인천국제공항, 4대강 사업 등 국책사업 진실 전해
|
국민들에게 '4대강 장관'으로 알려진 정 전 장관은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들어왔다.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까지 8인의 대통령 휘하에서 대한민국이 흥왕하던 시대를 관통했다.
그러한 그가 지난 40년의 공직 생활을 돌아본 회고록 '강에는 물이 넘쳐 흐르고'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고속 철도, 인천국제공항, 경인 아라뱃길, 4대강 사업 등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고 잘못 알려진 국책사업의 진실을 현장의 시선으로 덤덤하게 전한다.
정 전 장관의 삶은 열정만큼이나 무모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순탄한 공직의 길을 걸어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죽어 가던 강을 살려 맑은 물이 넘쳐 흐르게 했고,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 공항을 만들었고, 고속 철도를 개통해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드는 등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뚝심 있게 수행했다.
정 전 장관은 "내 인생은 은혜였고, 감사였다"면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나라를 위해 일한 40년이 행복했다"고 돌아봤다.
다음은 정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강에는 물이 넘쳐 흐르고'이고 부제가 '의미 있는 도전'이다. 회고록을 내게 된 계기는.
사무관으로 시작해서 장관까지 40년이란 세월을 끊임없이 달려와 공직을 마무리했다는 것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후배들에게 내 경험을 남겨놓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은 대부분 자화자찬이나 이슈 메이킹을 통해 관심을 끄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런 종류의 책 하나를 세상에 더 내놓게 되면 안 되지 않느냐 이런 고민을 하다가 건강이 굉장히 악화됐다. 그때 문득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랑을 하거나 싸움거리를 만드는 책이 아니라 담담하게 후배들에게 지난 40년 동안 느끼고 겪었던 일들을 알려주고자 했다.
공직이라는 것은 고난과 형극의 길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공직은 편하고 노후가 보장되는 자리라고 선호하는데, 그렇지 않다. 공직은 제대로 잘해야 나중에 빛을 볼 수 있는 자리다. 그게 차마 권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길이다.
◇책을 읽다보면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고속도로 건설을 빼고는, 대한민국의 획기적인 인프라 건설과 관련된 이야기가 거의 모두 나온다. 고속 철도, 인천국제공항, 경인 아라뱃길, 4대강 살리기 등 한국 현대사와 맞물린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1972년도에 공직을 시작해서 장관을 3년 3개월하고 마무리했는데 공교롭게도 40년이란 세월이 여덟 분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이 가장 왕성하게 발전했던 시기였다. 아주 역동적인 시기에 사회간접자본(SOC)이라는 기초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 나라 발전의 기본 요소인데, 하나씩 탑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했다. 이러한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었을까. 40년이란 세월은 대단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당시 철도청은 100년 동안 쇠로 만든 바퀴가 강철로 만든 레일 위를 달리며, 폐쇄적이고 관료적인 공무원들이 운영해 온 조직으로 고객 서비스 개념이 원초적으로 없었다. 그 100년 묵을 때를 벗겨버리고자 했다. 또한 당시 고속 철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해서 진행되던 시기였는데 고속 철도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해야겠다 싶었다.
국민 세금으로 하는 사업이고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큰 분야인데 민간보다 앞서나가야 한다고 봤다. 그렇게 만들기 위한 강한 집념이 있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최고 중의 최고)를 추구하는 성격 탓도 있다. 이를 위해 공부를 지독하게 했다. 정확히 알고 방향을 잡지 못하면 직원들이 따라올 수가 없다. 세계적인 추세가 어떻게 가고 있고, 철도청은 향후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이런 방향을 단시간에 잡아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또한 직원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도 중요했다. 수차례 토론을 거치며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직원들이 나의 분신처럼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사람을 공감시키고 스스로 일하게끔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고속 철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 "우리나라 같이 좁은 나라에서 왜 이렇게 빠른 철도가 있어야 하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스피드 이즈 커패시티'(Speed is capacity), 즉 속도는 용량이다. 서울과 부산 간의 물동량이 꽉 차서 기존의 고속도로는 이 물동량을 수송할 수 없었다. 고속 철도를 만들기 위해 국회에서 싸웠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했는데, 지금으로서는 고속 철도가 주요 도시들 간의 주된 교통수단이 됐다. 요즘도 하루가 다르게 철도 노선이 신규 개통되고 있는데, 장관 재임 시절 세워놓은 계획들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고속 철도가 실생활에 구석구석 들어가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책에는 '원고 천성산 도룡뇽' 이야기도 나온다. '소송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지율 스님이 국민의 세금을 엄청나게 낭비시키고도 '슬프게도 천성산에는 도룡뇽 천지였다'고 했다.
공사 현장에서 환경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훈수를 놓기 시작하니 상당히 극복하기 어려운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됐다. 거기다가 지율 스님이 중심이 되어 앞장서고 공사가 중단되자 그 손해가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했다.
◇메마른 강에 강물이 넘쳐 흐르게 하고,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를 위해 '4대강'을 살렸는데 정치적인 목적으로 폄훼되고 정쟁으로 악용당하기도 했다. 4대강 사업에 관해 듣고 싶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다목적 댐을 무수히 만들었다. 박 대통령은 대단한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호수가 없다. 비는 여름철에만 오고 나머지 세 철에는 비가 자주 오지 않는다. 다목적 댐은 만들었지만, 강에 대해서는 손을 못 썼다. 터져나간 제방을 다시 쌓고 축조하는 데만 치수 대책을 세웠다. 수재의연금을 매번 거두고 그랬다. 근본적으로 제대로 된 이수·치수 대책을 세워야 했다. 사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이수·치수 대책을 만들었는데 캐비닛에 넣어 놨다. 워낙 규모가 크니 실행을 못 했던 것이 이명박 정부에서 실행됐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구상으로 제시했던 '한반도 대운하' 계획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사태가 터졌고, 이로 인해 2008년 경제 위기가 몰아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업으로 진행된 것이다.
4대강의 보는 오염을 방지하는 등 정말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 세계 어디를 가 봐도 네덜란드나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보를 이렇게 과학적으로 만든 곳이 없다. 또한 4대강 개발로 인해 녹조 현상이 생긴 것이 아니다. 녹조는 햇빛과 온도, 영양물질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유속과는 관계가 없다. 우리나라는 지력이 약해 비료를 많이 쓰는데, 이 비료가 주 원인이다.
|
장관이 직접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일도 가끔이었는데 실무자 보고는 더더욱 드물었다. 일은 장관이 하는 게 아니라 참모들이 하는데, 보고도 내가 하는 것보다 실·국장이 직접 하고 대통령과 토론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장관직을 한 3년 3개월 동안 그런 식으로 보고한 게 횟수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많았다. 실무자 보고는 대통령도 국정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처음에는 사실 '잘못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조금 겁도 났다. 하지만 '장관 두 번 하나' 싶었다. 배짱으로 밀고 나갔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장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일했으면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폄훼됐다고들 한다. 이 전 대통령 밑에서 일하면서 어떤 것을 느꼈나.
리더로서 일하는 모습이 나무랄 데 없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실무자들이 요청한 보고를 받으며 신나게 토론하고 정책으로 이끌었다. 그런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대통령은 흔치 않다. 사실 대단한 대통령이었다. 언젠가 역사가 회복돼야 한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데도 정치를 할 것으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대전시장 후보 등을 추천받기도 했는데 최종적으로 정치를 하지 않은 이유는.
젊었을 때는 정치에 대한 꿈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선배에게 내가 정치를 해야 될지 물었더니, "자네 사람 좋아하나?" 이렇게 되물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무척 싫어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네 같은 성격은 정치를 못할 것"이라며 "정치는 미워하는 사람까지 끌어안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장수 장관을 하고 나서 로펌이나 기타 등등 여러 곳에서 제안이 왔다. 하지만 "저 양반, 장관할 때는 존경받았는데 그만 두더니 별 수 없구만." 이런 얘긴 듣고 싶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열심히 공부하고, 공직자로 들어가서는 뜻을 펴고, 물러나면 조용히 지내고, 혹시 기회가 되면 후배들 가르치는 게 최상의 길이라 생각했다.
|
1948년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난 그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했으며 교통부, 건설교통부 등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98~2001년 철도청장을 역임했고, 2004~2006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2007년 우송대학교 철도건설환경공학과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2008년 2월 29일에 이명박 정부 제1대 국토해양부장관으로 취임해 2011년 6월 1일까지 총 1189일 동안 재직했다. 2013년부터 아시아투데이 상임고문으로 있다.
|
정리 = 전혜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