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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시사상식] 비자금 스캔들로 민낯 드러난 日 자민당 파벌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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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식 기자

승인 : 2023. 12. 1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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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Politics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2021년 12월 6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
"2000년 이후 일본 정계를 지배해온 세이와카이(淸和會·세이와정책연구회)가 존속 여부를 위협받는 '종말의 시작' 상황이 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달 초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 소속 의원들이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얻은 수입 내역을 장부에 제대로 기재하지 않는 등의 수법으로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대거 연루되자 해당 소식을 전하며 이 같은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여기서 닛케이가 언급한 세이와카이는 아베파의 정식 명칭입니다. 일본 언론들이 보도 편의상 모임의 회장을 맡은 핵심 인사의 성(姓)을 붙여 간략하게 OO파, △△파라고 통칭하지만, 자민당 내 파벌은 정책연구나 친목 등의 목적으로 결성되는 까닭에 대부분 OO회나 △△정책연구회라는 간판을 달고 활동합니다.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가 이끄는 당내 2위 파벌 아소파는 시코카이(志公會), 정치자금 스캔들이 불거진 이후 탈퇴하기는 했지만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한때 맹주로 있었던 4위 파벌 기시다파는 코치카이(宏池會·코치정책연구회)라는 정식 명칭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정치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와 같은 오프라인 방식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활용한 온라인 후원 방식을 통해 정치자금을 마련합니다. 일본 자민당 파벌이나 개별 정치인의 경우 '정치자금 파티(パ-ティ-·Party)'라고 부르는 독특한 방식의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활용하는데, 여기에 참석하는 개인과 단체는 1장에 2만엔가량의 금액이 책정된 파티권(초대권)을 구매해야 합니다. 그리고 파티 주최측은 개인이나 단체가 파티권을 20만엔(한화 약 183만원) 이상 구매했을 때는 정치자금법에 따라 반드시 이를 수입지출 보고서에 의무적으로 기재해야 합니다.

이번에 제기된 불법 비자금 의혹은 단순히 실수로 파티권 판매 금액 기재를 누락한 게 아니라 파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정치자금 일부를 빼돌린 것 아니냐는 점에서 파장이 큽니다. 이 사건을 조사 중인 도쿄지검 특수부에 따르면 가장 많은 정치인이 연루된 아베파의 경우 파티권 할당량을 초과 판매한 소속 의원들에게는 그 초과판매 금액을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고 배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만엔 이상 모금한 정치자금을 장부에 남기도록 한 정치자금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탈세 혐의까지 더해져 형사처벌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 같은 정치자금 스캔들이 자민당 내 파벌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4일 아베파 소속 관료인 마츠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니시무라 야스토리 경제산업상, 스즈키 슌지 총무상, 미야시타 이치로 농림수산상 등이 제출한 사직서를 즉각 수리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후임으로 하야시 요시마사(기시다파), 사이토 겐(무파벌), 마쓰모토 다케아키(아소파), 사카모토 데쓰시(모리야마파) 등 비아베파 의원들을 임명했습니다. 이번 부분 개각은 소수 파벌 출신인 기시다 총리가 다른 파벌과 연합해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숙청한 듯한 모양새라 앞으로 당내 분열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자민당_파벌정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4일 불법 비자금 조성 의혹에 연루된 자민당 최대파벌 아베파 소속 관료를 경질하고 후임에 비아베파 의원을 임명하는 부분개각 인사를 단행했다. /NHK 뉴스화면 캡처
실제로 하기우다 고이치 정무정조회장 등 당내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아베파 의원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기시다 정부와의 결별을 선언하며 각을 바싹 세웠습니다. 세코 히로시게 참의원 간사장은 이날 사직서 제출에 앞서 기자들을 만나 "기시다 총리가 총리의 권한으로 인사를 단행한 것처럼 저 역시 제 의사대로 소신 표명을 하겠다"며 공개적으로 사의를 밝혔습니다. 산케이신문은 이 같은 항명성 줄사퇴에 대해 아베파가 앞으로 더 이상 기시다 정부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일본 정치는 1990년대 초반과 2008년 두 차례 사회당, 민주당 등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아주 잠깐 짧게 이뤄진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 자민당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민당의 역사는 곧 '파벌 정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총선이 있을 때마다 핫이슈는 어느 당이 승리해 정권을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자민당 내 어느 파벌이 총리를 배출해 권력의 정점에 서느냐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자민당 파벌의 역사는 1955년 요시다 시게루, 하토야마 이치로, 시게미쓰 마모루 등 거물 정치인을 중심으로 결성한 모임에서 출발한 이후 새로운 리더의 등장에 따라 다른 파벌로 나눠지거나 생기고 또 합쳐지는 이합집산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자민당에는 가장 많은 99명의 소속 의원을 확보하고 있는 아베파를 비롯해 아소파(56명), 모테기파(53명), 기시다파(46명), 니카이파(40명), 모리야마파(8명) 등 6개 파벌이 존재합니다. 물론 자민당 의원 중에는 이번에 새로 입각한 사이토 경제산업상과 같이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이른바 '무파벌' 의원도 드물지만 있습니다.

아베파의 반발은 이번 비자금 의혹에 다른 모든 파벌 소속 의원들도 적잖이 연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총리가 자신은 무관한 일인양 행동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됐습니다. 당 일각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다른 파벌 수장인 아소 부총재, 모테기 도시미츠 간사장과 연일 회합을 가지면서 비자금 의혹 문제를 다른 파벌로 확산시키지 않고 아베파만의 문제로 정리하기로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증세 등 잇따른 실정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에 고민 중인 기시다 총리가 당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 출신을 당 주요 요직과 내각에서 퇴출시키는 것으로 국면전환을 꾀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하는 것이죠.

이번 부분 개각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정부의 지지율은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파벌간 분쟁 악재로 더욱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자민당 내에서는 기시다 총리의 뒤를 이을 차기 총재 선출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특히 또 다시 불거진 정치자금 스캔들로 파벌 정치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차제에 개혁적인 인물을 내세워 '파벌정치와의 이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70년 가까이 지속돼 온 자민당의 파벌 정치가 그리 쉽게 뿌리뽑힐 지는 의문입니다.

주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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