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대중 관심 돌리려는 정치적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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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일간 24kg지는 20일(현지시간) 국기 변경과 관련한 법안이 국회 표결에서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누르란벡 샤키예프 국회의장은 이날 "국기변경 법안은 토론 절차 없이 이뤄진 국회 표결에서 찬성 59표, 반대 5표로 가결됐다"며 "이는 변경사항이 아닌 수정사항이며 새로운 국기로 바뀐 것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말 누르란벡 국회의장 제안으로 시작된 국기변경안은 초반에는 큰 국민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열린 국회에서 첫 법안으로 국기변경 법안을 채택하고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직접 주도하면서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반대 여론이 거셌다.
아잇벡 쿠르마노프 야당 비례대표와 엘누라 주마노바 잘랄아바트 시의회(여당) 대표 등은 "정부와 입법부 대표들은 이전에 한 약속을 우선적으로 이행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국기를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산더미 같이 있다"며 여야 할 것 없이 반대한다는 입장을 같이 했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국기 변경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는 국기변경을 반대하는 게시물이 넘쳐나고 있고, 극히 소수이지만 일부 국민들은 수차례 거리로 뛰쳐나와 반대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자파로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회 연설에서 "재임기간 동안 약 30개국을 방문하면서 접견한 외국 정상들이 5차례나 국기에 대한 질의를 해왔는데, 국기 모양 때문에 그들 대부분은 키르기스스탄을 농업국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국기 변경에 나설 수밖에 없는 취지를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키르기스스탄 국기는 1992년 3월 3일 제정됐으며, 붉은 배경 가운데에 있는 심볼은 태양과 다민족을 의미한다. 자파로프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언급한 '오해'란 바로 이 태양 심볼이 해바라기 모양으로 오해받는다는 뜻으로, 실제로 수정안에선 곡선형으로 돼 있던 기존 태양 심볼을 직선 모양으로 바꿨다.
현지 전문가들은 자파로프 대통령이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기 변경을 강행한 이유에 대해 국정 장악력을 확인함과 동시에 국민의 관심을 전환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과거 정치적 범죄에 연루돼 1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자파로프는 지난해 10월 야권의 총선 불복시위 과정에서 사면됐고, 이후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한 뒤 치러진 2021년 대선에서 79.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전 대통령 및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부패수사, 그리고 최우선 당면 과제인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데엔 실패해 정치적 어려움을 겪어 왔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산하 연구소 일리야 바이코프 박사는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국기의 일부분만 변경했다"며 "이는 이념적인 것이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이뤄진 것으로, 정부 입장에선 대중의 관심을 다른 현안으로 돌리려는 시도일 뿐이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