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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다. 이 사건은 놀랍도록 조용히 지나갔다. 단편적 보도는 있었지만 파장은 없었다.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난 이유는 명확하다. 현재 정치권이 온통 대선 정국에만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작 국가 안보와 사회기반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사안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이번 마약 밀반입은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국제 마약 조직들이 한국을 환적지, 경유지로 삼으려는 전략적 시도다. 국내 소비가 아니라, 한국을 거쳐 제3국으로 가는 중간 기착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이 그러하더라도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 모든 정황이 미국의 첩보 제공 없이는 적발조차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국내 정보·단속 능력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뜻이다. 해안선 2400㎞를 가진 나라가 첨단 장비 없이 마약선 하나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문제는 미국이 이미 수년 전부터 겪어온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펜타닐 참사'다. 펜타닐은 헤로인의 수십 배 중독성을 가진 합성 마약으로, 매년 7만명 이상의 미국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이 펜타닐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원료가 출발해 멕시코에서 가공된 뒤, 미국으로 바로 들어가고 일부는 캐나다를 거쳐 유입된다.
이 유통구조를 꿰뚫은 인물이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1기 집권 시절(2017~2021) 펜타닐 문제를 국가안보 사안으로 격상시켰다. 동시에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제재를 발동했다. 그는 펜타닐 이슈를 '중국이 미국을 약물로 공격하고 있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력하게 대응했고, 이후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까지도 밀어붙였다. 그 후 바이든이 이런 기조를 다 허물었지만 재집권한 트럼프는 더욱 강경한 국경통제는 물론, 지난 10~11일 스위스 제네바의 미중 관세 협상에서 중국의 펜타닐 원료 수출문제를 강력 경고했다. 펜타닐 관련 특별관세 20%는 중국의 반발에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마약 문제는 정보, 외교, 제재, 안보가 총동원돼야 해결 가능한 국제 범죄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옥계와 부산 사건은 그저 '세관 수사 성공' 정도로 인지됐을 뿐, 정부 차원의 전략, 국회 차원의 논의, 정치권의 경각심은 전무하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정과 안보수장들이 줄탄핵된 한국의 무정부 상태는 호시탐탐 노리는 국제 마약 카르텔의 좋은 표적이 됐을 것이다. 게다가 국내에선 펜타닐 유사체가 '연구용 화학물질'로 포장돼 온라인에선 은밀히 유통되고 있다. 이미 몇 건은 적발됐다고 한다. 더 무서운 건, 아직 적발되지 않은 루트들이다. 펜타닐은 다양한 이름과 구조로 재등장하고 있다. '디자이너 마약'이라는 이름 아래, 규제를 피하며 더 강력한 중독성을 지닌 변종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범죄는 진화하고 있으니, 단속도 국제적인 수준으로 진화해야 한다.
한국 역시 이제는 마약 안전지대가 아니다. 옥계와 부산에서의 적발은 시작일 뿐이다. 특히 이번 사건이 모두 미국 정부의 정보 제공으로 적발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도 이제는 마약 단속을 넘어, 국제 범죄 공조, 외교, 정보력을 총동원하는 종합 안보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마약은 더 이상 지하범죄 조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안보, 국민 건강, 청년 세대의 미래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회·국가 재앙이다.
'마약 청정국'이라는 환상은 이미 깨졌다. 이제 중요한 건, 이 경로를 열지 않는 일이다. 국제정보 공조, 해상 감시 체계, 밀수 선박 추적 기술, 전자 상거래 감시까지 전면적인 업그레이드를 서둘러야 한다. 아무리 대선 정국이라 해도 국가의 치안·안보 위협은 절대 뒷선이 되어선 안 된다. 마약과의 싸움은 곧 국가의 존망을 가르는 싸움이다. 국민이 마약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면, 그 어떤 경제성장도 복지 정책도 미래세대 교육도 무의미하다. 이 싸움에서 뒤처지는 순간, 거리에서 흘릴 우리 청소년들의 눈물은 우리 모두의 몫이 된다. 지난번(5월 7일) '세상 읽기' 칼럼에서 필자는 동성애, LGBTQ+, 성평등교육,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국민의 4대 헌법 의무(국방·교육·근로·납세)를 지탱하는 사람의 '근본 의무'요, 국민 됨의 근본 의무라고 주장했다. 국제 마약 카르텔을 분쇄하고 이 땅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 됨의 근본 의무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국민을 인도할 수 있는 후보가 선출되는 대선이 되어야 한다. 대선 정국에 '개미 떼에 설탕물'을 뿌리며 인기 영합 망국적 공약을 늘어놓는 좌파 포퓰리스트, 가족관계와 남녀문제에 부도덕한 가짜 위선자는 퇴출시켜야 한다. 동성애, LGBTQ+ 등과 마약에 관한 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같은 가치관과 추진력을 공유한 인물이 등장해야 할 때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손대오 전 세계일보 편집인 주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