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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경쟁과 어려움 속에서도 건축을 통해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꿈꾸는 '젊은 건축가'가 적지 않다. 외국 유학을 통해 본인의 철학을 건축 분야에 심기 위해 나아가는 정선아 건축가가 그중 한 명이다. 한양대학교 건축학사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건축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카스텔리 디자인에 재직 중이다. 그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젊은 학생들이 세계적 건축가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소개한다.
Q. 해외 유학에 나서게 된 이유는?
정선아(이하 정)= 멋지기만 한 건축을 원하진 않았다. 학생 때부터 기존과는 다른 공간에서 이용자가 쌓을 수 있는 다양한 관계에 더 집중했고, 목적에 맞는 새로운 공간을 제시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건축가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회가 원하고 필요한 것을 잘 읽고 공간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이런 이상이 반영된 프로젝트는 결과도 좋았다.
특히 디자인이 결정되기 전 전 직원들이 고군분투하며 배치도와 평면을 변경하고 각기 다른 안들의 장단점을 토의하는 시간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건축이 속하게 될 사회적·물리적·역사적·시대적 맥락을 잘 읽어야 하는구나'를 뼈저리게 느낀 셈이다. 건축가가 그리는 선 하나하나가 갖는 무게를 실감하게 됐고, 책임감 있는 선을 그리기 위해선 사회를 읽는 능력은 물론 디자인 철학을 더 갖춰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이유로 일보다는 사회를 읽는 공부가 우선돼야 한다고 판단해 유학을 결심했다.
Q. 한국과 미국 건축 교육의 본질적 차이를 꼽는다면?
정=한국에서의 교육은 '건축' 자체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대학 시절 진로를 고민할 때도 자연스럽게 건축과 관련된 길만을 생각했다. 반면 미국의 건축 교육은 설계와 디자인 자체에 훨씬 더 깊게 연구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인간이 창조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디자인의 밑바탕을 이루는 이론·역사·철학 수업들도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덕분에 이전에는 혼자 망상이라 여겼던 아이디어들을 발전시키고 재구성할 수 있었다.
또 미국 유학 중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교수와 학생 간 수평적인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교수들은 '교수님'이라는 호칭 대신 '퍼스트 네임'으로 불리길 원했다. 권위가 아닌 진심 어린 사명감으로 학생들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봤다. 교수께서 '틀린 것은 틀렸다'라고 명확히 하면서도, 학생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따뜻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환경 덕분에 학생으로서도 더 열린 마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Q. 하버드 유학 생활은 어떠했나?
정=운 좋게 세계 최고의 건축학교 중 하나인 하버드 GSD(Graduate School of Design)를 다니게 됐다. 모두 진지하게 자신의 길을 고민하며 미친 듯한 학업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모든 학생이 성실함이라는 기본기를 편차 없이 갖추고 있었다. 그 안에서 오는 시너지 효과도 굉장했다. 부지런한 사람은 물론 느긋한 사람도 있었지만, 누구 하나 빠짐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성실하게 해냈다.
평범해 보이는 '씨앗'들이 '옥토'에서 햇볕을 받고 훌륭하게 자라났다고 생각했다.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들이 좋은 교육 환경을 만나니 졸업할 때쯤 모두가 눈에 띄게 성장한 것을 보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 큰 영감을 줬다.
Q. 서울·네덜란드·뉴욕 간 실무 분위기 차이는 어땠나?
정=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해외사업부가 따로 있는 역사와 규모를 갖춘 한 국내 건축사사무소에서 일을 했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한국어를 기반으로 한 국내 프로젝트에 집중됐다.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프레스 릴리스·소통 등 모든 과정이 철저히 한국어 중심이었다. 여러 문화권과 나라에서 일 해봤지만, 단일 언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하는 곳은 한국 건축사무소가 유일했던 것이다.
네덜란드 회사에서는 짧게 6개월간 게스트 스텝으로 일한 것이 전부였지만, 회사 사람들의 당당한 자신감을 느꼈다. 세계를 무대로 건축설계 아이디어를 파는 회사라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기존 작업 이론화·시각화·다큐먼트화·출판 등 모든 업무가 활발하고 체계적이었다. 전세계에서 직원들이 오니 대체로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기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있다고 생각했다.
뉴욕도 마찬가지다. 직장 생활의 난이도가 정말 높다고 느꼈다. 기본적인 생활 여건도 다른 데다, 모든 직원이 매일 같이 업무를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공부하는 것처럼 하는 열정이 남달랐다.
Q. 건축 관련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정=건축 유학은 '확실한 보상'을 기대하고 떠나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봉이 오르거나 모든 배움이 당장 유용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학을 갈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투자해야 할 물적·심적·체력적 기회비용이 크지만, 그걸 감수했을 때 세상은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유학을 통해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벽'들을 넘을 수 있었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은 언어 문제다. 현실적인 조언으로 건축보다 영어가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언어가 자유로워야 생각을 세상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Q. 최근 관심을 갖는 건축 분야는?
고전 건축 양식에 관한 연구를 더욱 깊게 하고 싶다. 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새로운 '건축 어휘'를 탐구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나아가 건축 공간이 줄 수 있는 시청각·촉각적 효과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도 구하는 중이다. 자극 일변도의 현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만큼, 어떻게 하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공간을 재구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어떤 건축적 요소가 필요한지 현재 실무를 통해 알아가고 있다.
Q. 추구하는 건축 디자인은?
추구하는 건축디자인은 목적에 맞는 디자인 프로세스를 생각해 내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실제 건축물에 적용하는 것이다. 특히 자연 친화적 건축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간 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벽을 세운 바 있다. 역설적으로 결국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건축물이란 자연 속에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직 나의 건축 철학을 말하기 이르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결국 자연 속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란 철학을 가지고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
※ '건축가' 정선아는 ?
-1989년 출생
-2008~2014년 한양대학교 건축학사 졸업
-2019~2023년 하버드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건축석사 졸업
-2014~2017년 공간건축 재직
-2019년 쿠움파트너스 재직
-2021~2022년 MVRDV 재직
-2024년 오브라 아키텍츠 재직
-2025년 현재 카스텔리 디자인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