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민화의 자유로운 정신, 현대 작가들이 재해석하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523010011584

글자크기

닫기

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05. 23. 07:00

에이치플럭스(H-flux) 갤러리, '속스럽고 자유로운'전 개최
ㅇ
/에이치플럭스(H-flux) 갤러리
민화가 지닌 '자율성', '경계 허물기', '파격'의 정신이 현대 미술과 만나 새로운 해석을 선보인다.

서울 종로구 에이치플럭스(H-flux) 갤러리는 개관 1주년을 맞아 '속스럽고 자유로운'전을 이달 23일부터 다음 달 27일까지 연다. 이지현, 곤도 유카코, 김현수, 임민성 등 4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민화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전시한다.

김현수 작가는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산속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그의 화폭에는 돈, 철조망, 판문점, 나뭇잎으로 만든 탱크, 지폐로 접은 배 등 한국의 분단 현실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소재들이 초현실적으로 결합돼 있다.

작가는 이러한 무겁고 경직된 소재들을 놀이와 유희의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사회화된 자아를 해체하고 억압된 현실로부터 '탈주하는 자아'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와 이데올로기에 물든 현대사회를 풍자하면서도, 민화가 추구해온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을 환기시키는 작업이다.

2005년 한국에 정착한 일본 작가 곤도 유카코는 일상 속 생활용품과 음식을 소재로 독특한 정물화를 선보인다. 그는 17세기 네덜란드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 형식을 차용하여 삶의 유한성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바니타스 정물화와 민화의 차이점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바니타스가 죽음을 사유하게 한다면, 민화는 삶의 염원을 다룬다. 이 이질적인 두 전통을 결합한 그만의 정물화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익숙한 사물들로 채워진 그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적 일상이 교차하는 유희적 장면을 연출하며, 삶의 덧없음과 인간의 소박한 소망을 동시에 담아낸다.

이지현 작가는 전통 비단에 민화의 책가도 형식과 현대인의 욕망이 담긴 베어브릭을 중첩시킨 작품으로 주목받는다. 베어브릭은 키덜트 문화의 아이콘이자 고가의 수집품으로, 소비사회의 욕망을 상징하는 동시에 각박한 현실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 욕망을 담은 추억의 대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통 매체를 고집하면서도 그 위에 동시대의 욕망을 교차시킨다. 특히 여러 겹의 비단을 중첩하는 방식을 통해 비단 특유의 반투명한 질감을 살려 화면에 은은한 깊이와 감각적인 밀도를 더한다. 물질적 욕망과 감정의 치유라는 양가적 감정이 반영된 작품을 통해 현대인의 사회적 욕망과 내면의 행복을 공존시키는 것이다.

임민성 작가는 자연과 하나 되어 뛰어놀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행복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의 신작 'Desirescape 욕망의 정원'은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의 정원'을 배경으로 차용했다.

작품에는 전통 민화에서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학이 등장하고, 명품백, 고급차, 골프 문화 등 현대 사회의 기호가치들이 어우러져 있다. 명품백과 고급차는 오늘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하고 서열을 조장하는 소비사회의 욕망을 상징한다. 작가는 과거 사람들의 욕망과 현대인의 욕망을 하나의 화면에 병치시킴으로써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번 전시는 민화가 지닌 자유로운 정신과 파격적인 표현 방식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과 어떻게 공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네 작가 모두 전통 민화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현대인의 삶과 욕망, 그리고 행복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전혜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