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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보호받지 못한 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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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기자

승인 : 2025. 06. 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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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 소재 서울시교육청 내 제주 교사 사망 사건을 애도하기 위한 추모공간이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박주연 기자
박주연_증명
지난달 제주의 한 중학교에서 40대 부장교사가 교내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교사는 수개월 간 특정 학부모의 반복적인 민원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알려졌고, 유서에는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2023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교사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참담한 장면이었다. 교권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가 마련된 후에도 같은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계는 확실한 대책조차 없는 듯하다.

교육부는 지난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권 보호 강화 종합대책'을 내놨다. 대책은 학부모 민원은 교사가 아닌 학교가 대응하도록 체계를 개편하고, 교장·교감 중심의 '민원 대응팀'을 꾸리도록 했다. 민원 대응팀 자체로 해결이 어려울 경우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는 단계도 마련했다. 교사의 연락처 노출을 막기 위한 '안심번호 서비스'도 도입해 "이제는 달라졌다"는 메시지를 연일 강조해왔다.

하지만 제도는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았다. 부장교사와 같은 고경력 교사가 민원 대응을 요청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결국 존재하는 제도는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실질적 방패가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교사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3월 전국 교원 61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9.6%가 "법 개정 이후에도 교권 보호에 긍정적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문제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위기에 처한 교사가 그 제도를 알지 못하거나, 실질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지난해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에서도 지난해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린 사례만 4000건이 넘었고, 이 중 93%가 교권 침해로 인정됐다. 학생의 수업 방해(32.4%)와 보호자의 반복적 간섭과 협박(24.4%) 등이 대표적인 유형으로 꼽혔다. 결국 도움으로 이어지지 않는 교사 보호 체계는 교실 안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다.

학부모 민원 탓만 할 수도 없다. 교육적 소통과 정당한 문제 제기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이 수업보다 민원 대응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현실은 문제다.

교사의 죽음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작동하지 않는 제도와 책임을 분산시키는 구조, 일방적인 민원 중심의 문화가 맞물린 '구조'로부터 비롯된 참사다. 교권이 흔들리는 지금,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간 존중과 신뢰라는 기본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교사들은 '제도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실제로 보호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선언만으로 교권을 지킬 수 없다. 교권 보호 대책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무너지고 있지는 않은지, 철저한 점검이 필요한 때다.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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