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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이하 현지시간) 현지 일간 라테르세라에 따르면 행정부 총무처에서 근무해온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의 처제 피오나 보나티는 지난달 28일 공직에서 사임했다. 병가를 내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공무원 명단에 이름이 오른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보나티는 서둘러 사임서를 냈다고 한다.
보나티는 2023년 병가를 내고 이를 연장한 후 두 차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보나티는 "선천성 음식알레르기를 가진 아들을 돌보기 위해 병가를 연장해야 했다"며 "병가 중 외국에 나가면 위법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어 "여행을 하거나 외국에 나가려고 병가를 연장한 게 결코 아니었고 고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보리치 대통령은 "윤리적 기준을 우선시하기로 한 (처제의) 결정을 평가하며 지지한다"며 처제를 거들었다.
현지 언론은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해외여행을 위해 제도를 악용한 사례가 너무 많아 비판적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병가는 사실상의 유급휴가여서 칠레에선 그간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병가를 내면 출근하지 않고 쉬면서 보통 급여의 80%를 받을 수 있다. 병가를 내려면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한데 일반의는 최장 10일까지, 전문의는 11일 이상 쉬어야 한다는 진단서를 발급할 수 있다. 한때 칠레에선 병가를 위해 진단서를 남발하는 의사가 많다는 여론이 일면서 논란이 인 바 있다. 공무원의 병가 악용이 사회의 총체적 부패상을 드러낸 것이라며 여론이 분노하는 이유다.
칠레 감사원이 최근 공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23~24년 칠레에선 공무원 2만5078명이 병가를 내고 해외에 다녀왔다. 지난 2024년 9월 기준으로 칠레의 정규직 공무원은 40만7569명이었다. 전체 공무원의 6%가 병가를 내고 외국으로 여행을 다닌 셈이다.
공무원이 병가를 내면서 제출한 진단서는 3만5585건이었다. 두 번 이상 병가를 내고 해외여행을 다닌 공무원이 많았다는 얘기다. 감사 결과가 발표되자 칠레에선 병가 비리가 드러난 공무원 1100여 명이 황급히 사직했다.
칠레 정부는 징계를 위해 공무원 6000여 명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사태는 징계 정도로 수습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로 하면서다.
검찰은 허위로 병가를 내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공무원뿐 아니라 진단서를 발급해준 의사들도 수사, 비리에 협조했다는 사회적 의혹을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