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피의자 호송 과정에서 동승해야 한다는 내부 규정을 지키지 않아 자해사고가 잇따르면서 피의자 관리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술에 취한 채 소화기를 들고 역삼동에 위치한 술집의 문을 파손한(재물손괴) 혐의로 20대 남성 A씨가 현행범 체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된 A씨는 순찰차 뒷좌석에서 흉기를 꺼내 자해했다. 당시 A씨는 수갑을 차고 있지 않았고 흉기는 그가 함께 들고 탄 짐가방 안에서 꺼냈다. A씨는 이후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고 다음 날 퇴원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경기 용인에서 40대 여성이 벌금 수배로 경찰에 체포됐으나 순찰차 뒷자리에 홀로 앉아 있던 점을 이용해 살충제가 섞인 음료를 먹어 자해한 일이 있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으나 당시 경찰이 피의자를 호송하면서 수갑을 채우지도 않고 순찰차 뒷자리에 홀로 탑승하게 한 것으로 확인돼 감찰 조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피의자와 함께 순찰차 뒷좌석에 동승하지 않은 건 규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피의자 유치 및 호송 규칙 제57조에는 ‘경찰관은 피의자를 차량에 승차시켰을 때 도주 및 기타 사고의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감시에 적당한 장소에 위치해 항상 감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청은 자해·도주 우려가 있는 피의자에 대해 뒷좌석에 경찰관을 동승시킬 것을 지시해 왔다. 하지만 이를 현장에서 온전히 이행하기란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 인력 부족과 차량 구조의 문제, 피의자 공격성에 따른 위험 부담이 크다는 것이 일선 경찰의 목소리다.
실제로 경찰 내부 익명 커뮤니티 앱 등에서는 최근 강남 자해 사건 이후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경찰은 “동승 규정은 원칙이고,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자해는 결국 경찰 책임”이라며 규정 준수를 강조했다. 반면 다수는 “현장 상황을 모르는 지침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한 경찰관은 “건장한 성인 남성이 강하게 저항하며 발길질하거나 소지품을 이용해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며 “두 명이 같이 타도 깔고 앉지 않는 이상 뒷좌석 피의자 공격을 막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순찰차 헤드레스트와 철제 프레임 사이 틈으로 발을 찔러 운전자를 공격한 경우도 있다”며 “피의자보다 우리가 다치게 생겼다”고 말했다.
경찰 장비 자체도 문제다. 대부분의 순찰차는 피의자와 경찰이 동일한 차량 내부 공간을 공유하는 구조다. 호송 전용차나 칸막이 설치 차량은 일부 서에 한정돼 있어 실질적 안전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경찰 동승 규정이 반복되는 자해 사건을 막는 데 필수적이라고 보면서도, 규정만 반복 강조할 것이 아니라 현장 인력 충원과 차량 구조 개선 같은 물리적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이 피의자 호송 중 동승 규정을 지키지 않아 자해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는 분명 매뉴얼 미준수에 따른 책임이 따를 수 있다"면서 "다만 규정을 지킨다고 해서 (경찰)안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피의자와 동일한 공간에 경찰이 동승하게 되면 실질적인 물리적 제압 수단이나 보호 장치 없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경찰 매뉴얼의 원칙을 더욱 엄격히 지켜나갈 수 있도록 공권력 집행의 기준과 절차를 정비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를 갖춰야 한다"면서 "공권력 행사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함께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규정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현장 중심의 경찰 정책과 사법 판단 체계 확립 등이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