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물동량 처리 파시르판장 펼쳐져
정부 주도의 발 빠른 투자 진행
자동화·첨단화로 미래 시대 대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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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이 바다로 이뤄진 우리나라에선 배로 이동하는 수출입 물류가 99.8%에 달할 정도로 해운산업이 활성화돼 있다. 싱가포르 역시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인 무역 중심지로 발전해 왔고, 현재는 누구보다 빠르게 자동화·첨단화를 통해 해운업에 속도감 있게 대응하고 있어서다. 반면 범죄에 대한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존재하고 노동조합 활동이 제한된 독특한 특징도 있다. 싱가포르는 2040년까지 대규모 해운 프로젝트가 계획돼 국내 정부 인사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최대 터미널 운영사인 PSA와 이곳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국내 해운사들을 만나본다.
싱가포르/ 국내 해운업계는 강성노조가 존재하는 여타 제조업처럼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크다. 일례로 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 HMM은 해상노조와 육상노조가 별도로 존재하고, 최근 본사의 부산 이전 논란에 대한 각종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는 정부 산하인 PSA 하나의 터미널 운영사에서 해운업 전반을 총괄하고, 국가적인 특성으로 기업들은 노조 활동을 사실상 할 수 없다. 노조 자체로도 친정부 성향의 성격을 띠고, 파업이나 단체 활동을 하기 위해선 정부 중재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파업과 과격한 활동보단 대화와 조정 중심의 노사 관계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집권 여당이 60년째 주도권을 잡고 있어, 정책 일관성도 있다.
이러한 특징은 글로벌 해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대규모 해운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싱가포르는 기존 6개 지역에서 운영되던 터미널을 2040년까지 모두 정리하고 투아스(Tuas) 터미널 한 곳으로 모으고 있다. 터미널 한 곳에서 세계 1위 규모의 환적량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싶지만, 포 핑거(four finger, 네 손가락)으로 불리는 4개의 야드를 중심으로 6500만TEU를 처리할 수 있는 거대 터미널이 탄생하게 된다. 이는 글로벌 1위 항만인 상하이항 물동량(5000만TEU)을 뛰어넘는 규모다.
지난 17일 싱가포르 중심에서 동쪽으로 살짝 치우친 싱가포르 PSA 본사를 방문했다. 건물 바로 앞은 투아스로 향하기 전 아직 운영 중인 파시르 판장 터미널이다. 파시르는 비치(beach, 해변), 판장은 길다(long)는 뜻으로 이곳이 지리적으로 바다 앞 긴 직선형을 띠면서 탄생한 이름이다. 물동량 처리 규모는 연간 4300만TEU로, 부산항(2500만TEU)의 1.7배에 달하며 PSA 터미널 중에선 가장 크다.
HMM과 고려해운 등 국내 대표 해운사들은 1990년대 현지에 법인을 세우고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중 HMM은 지난 2020년 PSA와 협약을 맺고 전용 터미널을 확보했다. PSA 터미널로 매일 일정량의 HMM 선박이 들어올 수 있게끔 보장하는, 연간 회원권과 유사한 개념이다. HMM 관계자는 "양사는 꾸준히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며 "국적 선사가 현지 전용 터미널을 가진 것은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도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PSA 본사 19층에 올라가니, 60~70m가량의 높이에서 터미널 전체를 볼 수 있었다. 한눈에 다 들어올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대형 컨테이너들이 끝모르게 이어져 있었다. HMM의 컨테이너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다 위엔 아직 접안하지 못한 수많은 배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이날 대기 중인 HMM 선박이 접안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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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관계자 비유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의 8000TEU급 컨테이너선들이 하루에 45척 정도 이곳 터미널에 들어온다. 선적작업은 보통 1일~1.5일간 진행된다. 먼저 크레인으로 선박에 있는 컨테이너를 빼내고, 이후 야드 크레인을 통해 테트리스처럼 컨테이너를 쌓아올린다.
◇정부 주도의 발 빠른 투자…첨단 장비 도입도 '속속'
서울보다 조금 큰 면적의 국가에서 해운업이 발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지 관계자들은 입 모아 지리적인 이점과 영어의 공용어를 꼽는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간에 위치해 있고, 공용어가 영어라 글로벌 기업들 어디든 투자하기 쉽다는 설명이다. 또 정부가 해운업에 있어 국내외 기업할 것 없이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정부 주도로 산업을 육성하고 있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운업에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점이 부각된다. 국내 터미널 운영사는 ㈜한진, 부산신항만주식회사 등을 비롯해 PSA도 부산항에 투자하는 등 여러 곳으로 분산돼 있다.
반면 싱가포르는 PSA 한 곳에서 총괄하고, 노조 활동을 사실상 할 수 없는 국가적인 특징도 있다. 이 때문에 파시르 판장 터미널도 운영에 문제가 없지만 25년가량 사용하고 폐쇄에 들어갈 만큼, 정부 주도로 속도감 있는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자동화 장비가 도입될 수 있는 것도 현지 정부의 몫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노동조합 반발로 터미널에 AGV(자동화장비) 적용이 어려우나, 싱가포르에선 자동화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곳에서도 해운업이 맞이한 환경규제에 대비하기 위해 태양광, 전기 차량 등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PSA 관계자는 "2050년까지 넷제로를 목표로 친환경 전환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재)바다의품과 (사)한국해양기자협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