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집중보다 경제지원·北인권 등 전체적(Holistic) 측면서 접근해야"
"대북협상 전략·전술 측면서 대북방송 중단 찬성할 수 없어"
|
김 전 대사는 26일 아시아투데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궁극적으로 북핵을 폐기하겠다는 개념이라면 문제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전 대사는 이 대통령이 밝힌 'END 이니셔티브' 초기 교환(Exchange) 과정에서 어떻게 균형있는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할 것이냐에 따라 향후 비핵화 정책의 각도 조정이 가능할 것으로 진단했다. 김 전 대사는 남북 간 균형있는 신뢰 구축을 위한 차원에서 과거 서독 정부가 동독 정치범들의 몸값을 지불해 그들을 들여온 '프라이카우프'(Freikauf) 정책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한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북한에 대한 접근 방안으로는 '비핵화 협상'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포괄적인 차원의 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했다. "대북 경제지원, 북한 인권, 대북 정보 유입 등을 염두에 둔 접근 방법으로 전체적인(Holistic) 측면에서 북한을 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전 대사는 이재명 정부가 교류·협력에만 매몰되는 현상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대북 라디오 방송을 중단하는 등 정보 유입 활동에 제재를 가한 것을 두고는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툴(Tool)을 스스로 접어버렸다는 점에서 찬성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전 대사는 1978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주유엔대사, 국가정보원 제1차장,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등을 역임하며 공직 생활동안 북핵 문제를 다뤘다. 현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 재단' 상임이사로 재직 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이재명 정부가 핵을 용인하겠다는 입장만 아니라면 크게 다른 개념은 아닐 것으로 본다. 정책의 컨텍스트 시각에서 보면 동결이냐, 중단이냐를 과도하게 따지는 것은 현시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 이를 두고 정부의 북핵 정책이 바뀌었냐, 바뀌지 않았냐 논쟁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지속적으로 고도화되는 핵과 미사일 능력을 궁극적으로 포기시키려면 현실적으로 어느 시점에서 일단 중단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밝힌 'END 이니셔티브', 어떻게 평가하나.
"'END'의 개념 자체는 큰 흠은 없다. 비핵화를 마지막에 뒀는데, 북핵 고도화를 중단해서 핵능력 및 핵물질을 축소하고 궁극적으로 폐기한다는 개념이라면 문제없다. 'END 이니셔티브' 첫 번째로 거론된 '교류'(Exchange)는 과거부터 남북 신뢰구축을 위한 방안으로 김영삼 정부 당시부터 나왔던 정책이다."
△'END 이니셔티브', 우려되는 바는 없나.
"정권이 바뀌면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정책이 구호성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햇볕정책', '747 공약', '통일대박', '8.15 통일 독트린' 같은 구호성 정책이 성공한 사례를 못 본 것 같다. 구호보다는 전략이 중요하다. 그래서 초기 단계의 신뢰구축을 어떻게 상호 균형 있게 해서 남북 간 신뢰를 정착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이 과정에 따라 향후 비핵화 정책의 각도 조정이 가능할 것이다. 실용적인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용적인 전략이라면, 제언해 줄 것이 있나?
"독일 사례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동독이 '통일'이라는 용어에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였다. 이에 서독이 '접촉을 통한 변화'를 추진했다. 문제는 서독 정부 차원에서 실적주의가 만연하는 폐단이 발생했다. '변화'라는 궁극적인 목적은 희미해지고 '접촉을 위한 접촉', '교류를 위한 교류'가 된 것이다. 이에 서독 정부가 엄격하게 상호주의를 표방했다. 예컨대, '프라이카우프'(Freikauf), 서독으로 오고 싶어하는 동독 정치범을 돈을 주고 들여온 것이다. 이 제안을 동독이 받아들이면서 독일이 통일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재명 정부는 초기 교류협력에 너무 치우치게 되면 관계 정상화, 비핵화는 요원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통일부 장관의 언급에서 그런 느낌이 드는데, 교류협력에 매몰되는 정책, 경계해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한국과는 절대 마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END의 첫단계인 '교류'의 시작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북한의 그러한 태도는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김정은이 강한 입장을 표명한 이상 비핵화 협상에 집중하기 보다는 북한과 좀 더 포괄적인 차원에서 대화를 추진한다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대북 경제지원, 북한 인권, 대북 정보 유입 등을 염두에 둔 접근방법이다. 이렇게 전체적인(Holistic) 측면에서 북한을 대할 필요가 있다. 첨언하자면, 이재명 대통령이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는데, 우리 헌법에는 '평화적 통일'이 명시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과도하게, 매번 흡수통일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북한 비핵화 논의가 이뤄진다면 그 과정에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검증'은 '중단→축소→폐기' 가운데 '중단' 단계에 포함되는 것인가.
"교섭 중에 있는 모든 합의와 조치에는 상대가 안심할 수 있는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모든 것에는 검증이 필요하다. 러시아 속담에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는 말이 있다. 미국과 구 소련이 상호 핵무기 감축할 때도 직접 사일로(Silo·미사일 격납고)를 찾아가 검증하는 절차를 밟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북한을 핵 중단과 관련한 협상장으로 불러들이려면 한미도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반대급부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미 북핵과 관련한 6자회담 등 여러 회담에서 다뤘던 내용이나, 근본적으로 반대급부가 부족해서 북한이 협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과거 무수한 사례를 참고하면 될 것이나, 북한이 근본적으로 '비핵화'를 거부하고, 비핵화 언급만으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완고하게 거부하는 입장이라는 게 문제다. 당분간 낙관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가 북한과 신뢰 구축을 위해 대북 라디오 방송 중단 등 선제적으로 취한 조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선제적 조치'와 '일방적인 유화책'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대북확성기 방송이 중단되자 북한도 확성기 시설을 철거하며 호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북한의 호응이 없는데도 정부는 대북라디오 방송도 중단했다. 이런 점을 볼 때 우리가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툴(Tool)을 스스로 접어버렸다는 것은 북한 주민에 대한 정보 제공이라는 전략적 측면에서든, 또는 향후 있게 될 협상의 지렛대라는 전술적 측면에서든 찬성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