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케브랑리-자크시라크 박물관 소장품 등 180여 점 공개
오세아니아 예술, 인류학적 관점에서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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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브랑리-자크시라크 박물관은 비서구 세계의 예술과 문화유산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럽 중심의 미술사에서 주변부로 취급되던 예술들을 사유의 중심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 박물관에서는 지역별로 분리되어 온 예술이 관계와 이동의 역사 속에서 다시 해석된다. 서로 다른 문화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세계를 구성해 온 다양한 감각의 형태로 제시된다.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이 전시가 개최된다는 점은 지리적 맥락에서 의미가 크다. 남해와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바다는 오래전부터 사람과 물자, 이야기가 오가는 길이었다. 오세아니아의 섬들도 마찬가지였다. 별빛을 따라 노를 젓고 파도의 결을 읽으며 바다를 삶의 영역으로 삼았던 항해의 역사는, 바다와 면한 지역의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기억이다. 전시는 바다를 경계가 아닌 연결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조용히 상기시킨다.
전시 제목 '마나 모아나'는 폴리네시아어에서 왔다. '마나(Mana)'는 사람과 사물 등 모든 존재 속에 깃든 신성한 힘을, '모아나(Moana)'는 경계 없이 펼쳐진 거대한 바다를 의미한다. 이 둘의 결합은 곧 오세아니아 세계관 전체를 압축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힘을 감각하는 태도, 그리고 바다를 경계가 아닌 연결의 공간으로 여기는 사유. 전시는 이 세계관을 조각, 장신구, 의례 도구, 항해 관련 유물과 현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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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바다와 항해'에서는 별자리와 파도를 읽는 지혜가 담긴 카누 관련 유물 등 항해 관련 유물을 통해 오세아니아인들의 시선을 체감할 수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장은 멜라네시아와 폴리네시아의 조각과 의례문화를 다룬다. 나무 한 그루를 베기 전 허락을 구하고, 조상에게 바다의 안녕을 기원하며,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해 의례를 치르던 삶의 리듬이 유물 속에 남아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현대 오세아니아 작가들의 작업이 등장한다. 전통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언어로 다시 살아난다.
오세아니아 예술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재료다. 조개껍데기, 나무, 고래 이빨, 씨앗, 새의 깃털, 바위와 뼈 등 자연물은 단순히 조형을 위한 소재가 아니라 세계를 이루는 관계로 여겨졌다. 자연은 도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들에게 예술은 자연을 이용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는 오늘 환경 위기를 겪는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잃고 있는가. 관계를 파괴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예술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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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전시는 지금의 시간과도 연결된다.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많은 오세아니아 섬들은 정체성과 삶의 터전을 위협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단지 과거를 보여주지 않는다. 바다에 잠길지도 모르는 돌과 집, 의례의 장소, 그리고 그 안에서 이어져온 이야기의 현재를 함께 비춘다. 사라질지도 모르는 목소리를 듣는 일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세계적인 인류학·민속학 박물관인 케브랑리-자크시라크 박물관의 공동 기획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이러한 국제적 협업은 전 세계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공유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전남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국제 협업 기획전이다. 한국에서 오세아니아 예술을 이와 같은 규모와 구성으로 조망하는 사례 역시 많지 않다. 바다의 기억과 신성한 세계관, 공동체의 예술과 관계의 사유는 전시장을 걷는 동안 천천히 몸에 스며든다.
바닷길은 언제나 어디론가 이어진다. 이번 전시는 그 길을 따라 누군가의 오래된 삶을 만나고, 다시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전시장의 시간이 관람객에게 조용한 질문으로 남기를 바란다. 우리는 무엇을 잇고, 어떤 세계를 건너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