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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고베⑦] 에필로그: 지방소멸 앞 한국 도시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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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도쿄 특파원

승인 : 2026. 01. 28. 06:00

고베의 선택은 성장모델 아닌 '포기의 기준' 정하기
한국의 도시들은 무엇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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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엄청난 대지진 뒤 30년. 고베시는 완벽하게 항만을 복구했다./사진=최영재 도쿄 특파원
고베에서 만난 선택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새로운 도시를 짓겠다는 계획도,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는 구호도 없었다. 대신 반복해서 등장한 단어는 '관리'와 '선별'이었다. 고베는 키우는 도시가 아니라, 줄어드는 도시를 전제로 한 선택을 하고 있었다.

항구에서는 떠났던 사람들의 기록을 지우지 않았다. 이민자 조형물과 설명판은 항만 한복판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실내 박물관으로 옮기지 않고, 현재의 동선 위에 남겼다. 고베는 과거를 정리하지 않았다. 드러낸 채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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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가 많은 고베에서 숲은 보존이 아니라 관리되고 있었다. /시진=최영재 도쿄 특파원
산에 올라가면 사토야마 숲이 있었다. 이 숲은 손대지 않은 자연이 아니었다. 정기적인 솎아베기와 하층 식생 정리가 이뤄지고 있었다. 베어낸 나무는 현장에 남지 않았다. 숲은 방치되지 않았고, 관리되고 있었다. 자연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손을 놓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산 아래로 내려오면 빈집과 빈터가 있었다. 모두 철거하지도, 모두 살리지도 않았다. 위험한 집은 없앴고, 남길 수 있는 집은 남겼다. 사라진 집의 자리는 방치하지 않았다. 빈터는 텃밭과 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고베는 빈집을 '정리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줄어드는 도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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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시의 하수처리장에서 하수는 정화로 끝나지 않았다. 가스는 에너지로 쓰였고, 인은 회수돼 비료로 관리됐다./사진=최영재 도쿄 특파원
하수처리장에서는 또 다른 선택이 확인됐다. 하수는 정화로 끝나지 않았다. 가스는 에너지로 쓰였고, 인은 회수돼 비료로 관리됐다. 처리 이후의 행선지가 함께 설계돼 있었다. 버리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남길 수 있는 것을 남기는 구조였다.

숲에서 베어낸 나무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사토야마에서 나온 목재는 집적되고 규격화돼 고베 도심의 건축과 시설에 쓰였다. 숲 관리와 도시 사용은 분리되지 않았다. 고베에서 베어내고, 고베에서 썼다.

이 모든 장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고베는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계속 감당할 것인가를 먼저 묻고 있었다. 모든 지역을 살리지 않았고, 모든 기능을 유지하려 하지도 않았다. 대신 남길 것과 줄일 것을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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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완벽하게 복구된 고베 도심 /사진=최영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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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대지진으로 처참하게 무너진 고베 도심. /연합
한국의 도시들도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인구는 줄고, 공간은 남고, 유지 비용은 커진다. 산비탈 주거지와 산업지역 주변에서 빈집이 늘고, 관리되지 않은 숲과 기반시설은 위험 요소로 남는다. 문제는 이미 나타나 있다.

고베 르포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떠났던 기록을 지울 것인가, 남길 것인가. 숲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손을 놓을 것인가, 관리할 것인가. 빈집을 모두 없앨 것인가, 일부를 남길 것인가. 자원을 흘려보낼 것인가, 되돌려 쓸 것인가.

'지방소멸' 앞에서, 도시는 모든 것을 지킬 수 없다. 고베가 보여준 것은 성장의 모델이 아니라 포기의 기준을 정하는 방식이었다. 이제 질문은 한국을 향한다. 한국의 도시들은 무엇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는가?
최영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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