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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호르무즈 ‘통행료 현실화’…한국 경제에 붙을 보이지 않는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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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기자

승인 : 2026. 04. 0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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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오만 무산담 행정구역 인근 호르무즈 해협 주변 걸프 해역을 화물선들이 항해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김영진
김영진 산업1부 기자
전쟁에서 총성 만큼 무서운 것은 '길목'을 쥔 힘입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료 부과를 추진하고 사실상 통행 통제까지 강화하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세계 무역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1일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이란 의회는 최근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승인했습니다. 이곳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납니다. 구체적인 통행료 기준과 액수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부 선박이 최대 200만달러(약 30억원) 수준의 비용을 지급한 사례가 나오면서 사실상 '협상형 통행료 체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같은 해협의 병목현상은 단순한 물류 차질을 넘어 국가 경제 전반에 비용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부담을 가장 크게 떠안을 국가 중 하나가 한국이라는 점입니다. 국내로 들어오는 수입 원유의 약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지정학적 프리미엄이 반영된 국제 유가 상승분과 급등한 우회 항로 물류비, 여기에 통행 비용까지 더해질 경우 기업들의 원가 부담은 불가피하게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부가 비상 대응 체제로 전환하고 비축유 활용 등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는 단기 대응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곳은 정유 및 석유화학 업계입니다. 정유업계는 단기적으로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평가이익이 반영될 수 있지만, 스팟 정제마진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수익성은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원재료 가격 상승이 제품 가격에 충분히 전가되지 않을 경우 실적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석유화학 업계는 업황 부진 속에서도 사업 재편과 비용 절감 등을 통해 수익성을 방어해왔지만 이번 변수로 원가 부담이 확대되면서 실적 압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업계에서는 향후 투자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수요 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원재료 가격 상승까지 겹칠 경우 마진 축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응 기조 변화도 변수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제는 스스로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동맹국들이 직접 에너지 확보에 나설 것을 주문했습니다. 해협 문제를 동맹국 책임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으로, 미국의 개입 의지가 이전보다 낮아졌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기업 차원의 비용 절감이나 부처의 비상 대책 회의만으로는 이 파고를 넘기 어렵습니다. 호르무즈발 위기와 미국의 동맹관 변화가 일회성 충격이 아닌 '상수'가 되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특정 지역에 과도하게 편중된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독자적인 자원 안보 역량을 확보하는 뼈깎는 체질 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입니다.
김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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