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처폰 영광에 안주, 골든타임 놓치고
23개 분기 5조원대 손실내고 사업 접어
5년전 교훈 발판, AX 체질개선 가속도
전장·공조 차세대 먹거리 육성도 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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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 철수 결정을 내리며 스스로 이렇게 평가했다. 1995년부터 26년 간 이어온 주력 사업인데다, 한 때 전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3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기세를 떨쳤던 LG전자는 그렇게 스마트폰 사업 조정 계획을 밝힌 지 약 6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무려 23개 분기 연속 적자를 냈던 '아픈 손가락'으로 불려왔지만, 오늘날엔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실적 희비를 가른 핵심 요인으로도 부각된다. 최근 들어선 계속되는 대외 불확실성에 외형 성장 폭이 둔화하면서 스마트폰 사업 철수가 뼈아픈 실책이 됐단 평가를 받는다.
스마트폰은 접었어도, 이를 교훈으로 AI 시대 흐름엔 빠르게 올라타고 있다. 구광모 회장의 AX 속도전이 대표적이다. LG 전 계열사들이 제조, 소재 개발, 사무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에이전틱 AI(Agentic AI·사람의 개입이 없어도 의사결정을 내리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율 시스템에 초점을 맞춘 AI) 확대를 추진하는 배경이다. 사업적으로는 넘쳐나는 데이터센터 확장 시대를 맞아 냉난방 공조(HVAC) 사업과 '엑사원'으로 통칭되는 AI 기술은 글로벌 톱티어다. 개화를 기다리고 있는 전기차 파워트레인과 전장사업도 경쟁력을 갖춘 채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1000만대 판매고에 전세계 3위까지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출발점은 1995년이다. 당시 LG정보통신이 '화통(話通)'이란 브랜드로 휴대폰 사업을 시작했고, 1996년 '프리웨이'를 거쳐 1998년 국내 최초 폴더폰 브랜드 '싸이언'을 출시하며 삼성전자와 스마트폰 이전 세대인 피처폰 전성기를 이끌어왔다. LG전자는 당시 '귀족의 자손'이란 의미의 싸이언을 2000년 '사이버 세상을 연다'는 뜻으로 탈바꿈하며 혁신성을 강조했고, 컴팩트한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대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가장 존재감을 드러낸 건 2000년대 초반이다. 2005년 선보인 '초콜릿폰'은 대표적인 디자인 혁신 시도로 평가된다. 여기에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까지 곁들이면서 LG전자 휴대폰 중 처음으로 '텐밀리언셀러(1000만대 판매)'에 등극했다. 일례로 2007년 일본 공영방송 NHK는 '디자인 전쟁'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서 초콜릿폰의 독창성을 강조하며 '한류의 실력'이라고 호평한 바 있다. 이후 두 번째 텐밀리언셀러 '샤인폰' 등 흥행에 힘입어 2009년 2분기 휴대폰 사업에서만 1조2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2010년엔 노키아, 삼성전자에 이어 전세계 휴대폰 시장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스마트폰에 밀린 '피처폰 강자'
피처폰 시대 영광은 애플 '아이폰' 등장과 함께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휴대폰 시장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고 경쟁사들도 이 같은 흐름에 속속 합류했지만, LG전자는 피처폰 사업을 강행하는 악수를 뒀다. 삼성전자가 아이폰 견제를 위해 터치 스크린 기반의 '옴니아'를 선보인 것과 달리, LG전자는 초콜릿폰이나 프라다폰 등 기존 피처폰 후속작을 내놓는 데 그쳤다. 스마트폰 사업 철수와 관련, 과거 경영진들의 오판이 조명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스마트폰 사업을 주도했던 인물은 안승권 전 사장이었지만,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남용 전 부회장이었다. 남 전 부회장 체제에서 LG전자는 기술 경쟁력보다 마케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역량을 쏟았단 평가를 받는다. 특히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 등에서 마케팅 전문가들을 잇따라 영입하고, 스마트폰을 '찻잔 속 태풍'으로 평가했던 맥킨지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인 건 현재까지 뼈아픈 실책으로 거론된다. 2010년에야 안드로이드 기반의 첫 스마트폰인 '옵티머스'를 시작으로 'G' 시리즈, 'V' 시리즈 등을 출시하며 경쟁에 나섰지만, 이때까지도 조준호 전 사장 등 마케팅 전문가들이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X사업본부 수장에 자리하면서 반전을 도모하지 못했단 게 회사 안팎의 평가다.
황정환 전 부사장 등 기술 전문가가 뒤늦게 키를 잡았지만, 흐름을 뒤집긴 역부족이었다. MC사업본부는 2015년 2분기를 기점으로 2020년 4분기까지 23개 분기 동안 5조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냈고, 결국 2021년 1월 사업 재조정 계획을 밝힌 데 이어 같은 해 7월 공식 철수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장 트렌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기술 경쟁력에서도 밀리면서 국내 수요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것이 패착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전자 사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놓으면서 지속 성장을 꾀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빈자리에 '전장·공조'
올해 1분기 LG전자 영업이익은 1조6736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32.9% 증가한 수치로, 본업인 생활가전이 성수기에 진입한 영향이 컸다. 다만 통상적으로 '상고하저' 실적 흐름을 이어왔단 점에서 새 성장동력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700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TV 사업의 부진을 상쇄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 현재 LG전자는 원가구조 혁신과 함께 전장·냉난방공조(HVAC)를 차세대 먹거리로 삼고 사업영역을 확장 중이다. 지난해 두 사업에서만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뒀고, 올해 역시 1조원 중반대 영업이익이 점쳐진다. 박상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3년간 실적 정체와 신성장 동력 부재 리스크가 해소되는 초입에 진입했다"며 "전장 등 신사업도 구체화되고 있어 수익성은 고무적"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