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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남짓 세계를 혼돈 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중동전쟁의 진정한 패배자는 누굴까. 이란 핵무기를 솎아 내지 못한 미국이 패배자인가, 아니면 미국에 대항해 군사력을 소진한 이란인가. 그것도 아니면 미국과 공조해 옛 페르시아 왕국 이란을 공격한 이스라엘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패배자가 없는 전쟁인가.
이번 전쟁은 패배자를 언급하기보다는 승자를 먼저 얘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해 당사국들은 모두 이번 전쟁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동전쟁은 과거 개념 수준에 머물렀던 '게임 체인저', 즉 첨단 기술이 실제 전쟁터에서 제한 없이 구현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군사 기술의 발전 속도가 기존보다 훨씬 빨라지면서 전술과 전쟁 양상 자체가 급변하고 있음을 목도했다. 기동과 화력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드론과 미사일 중심의 타격전 양상이 강화됐다.
먼저 미국의 경우 그동안 개념 수준에서 머물렀던 새로운 군사 기술을 마음껏 과시했다. 이란 영토는 일종의 '테스트 베드(시험장)'였다. 실전 상황에서 군사 기술을 현장 검증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다시 발전시키는 군사적 혁신을 이뤄냈을 것이다. 실전 경험 없는 군사 기술과 그 기술을 다루는 미군의 업데이트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전쟁 과정 자체가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핵심 요인이 됐다는 평가다.
미국은 타깃을 콕 집어 공격하는 '정밀 타격'을 바탕으로 이란 영토 곳곳을 들쑤셔 놨다. 이 정도의 군사 충돌에도 불구하고 사상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도 미국에는 긍정적 결과다. 이란 상공에서 비상 탈출한 미군 조종사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을 제외하고는 양측 지상군의 교전은 전혀 없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을 정도로 생생했다.
이란은 어떠했을까. 이란은 세계 최강 미국에 과감하게 맞섰다. 성경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끌고 간 이란은 선방했다. 미국의 최신 무기에 드론 등 저가 장비로 맞서 성과를 냈다. 인터넷 등을 통한 선전전에서도 절대 뒤지지 않았다. 막대한 무기 손실이 있었지만, 그래도 군사력에 관한 한 나름대로 존재감을 보여줬다. 우라늄 농축 문제를 둘러싸고 시작된 전쟁이었음에도 고농축 우라늄은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인명 피해도 없었다. 그러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장악력을 높였다. 통항료를 걷어 국가 재건에 써야 한다는 사상 초유의 아이디어도 냈다. 전후 재건 비용과 국가 발전에 쓰일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 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중동전쟁에 따른 원유가 급등도 이란에 도움을 줄 것이다. 미군의 강력한 공격은 이란의 전쟁 수행 능력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으나 항전 의지 자체를 무너뜨렸는지는 회의적이다.
이스라엘은 어떤가. 교착 상태의 이란 핵 문제에 미국을 끌어들이는 성과를 거뒀다. 이렇다 할 도발 징후 없이 공격한 첫 사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래도 이스라엘로서는 미국과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도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중동 각국은 중동전쟁을 지켜보면서 군사력 강화를 다짐했을 것이다. 막강한 군사력만이 국가를 온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결심을 했겠다. 호르무즈 해협을 꼭 지나지 않더라도 자국산 원유를 해외에 수출하는 방안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걸프만에서 홍해로 1000㎞가 넘는 송유관을 만들었듯이, 이라크가 자국산 원유를 트럭으로 운반해 지중해로 옮겨갔듯이, 다들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느라 부심할 게다. 이렇게 중동전쟁은 명확한 패배자 없는 전쟁으로 역사에 남을 공산이 크다.
그렇지만 인류에게는 무엇을 안겨줬을까. 그건 바로 무차별 살상과 폭격, 거대한 건물이 시뻘건 화염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 아비규환, 끝도 없는 건물 잔해, 자국 이기주의, 해상 봉쇄 등 과거 보기 힘들었던 장면들을 안방에서 쉽게 접하면서 대규모 폭력 등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폐해를 던졌을 것이다. 상호 호혜 원칙에 따라 상부상조하는 지구촌 가족의 틀을 완전히 와해시키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이기심과 상대방에 대한 복수심을 가슴속 깊이 새겨두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역사의 평가가 남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인류에는 심하게 뒤틀린 현대 문명사가 기록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총과 칼, 군비 경쟁에 점점 빠져드는 인류에게 파국은 언제, 어떻게 올까.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