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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이슈]대한항공, 美→필리핀 수탉 운송 중단… ‘투계 통로’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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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6. 05. 03. 14:01

동물권 단체 "최대 운송사" 지목에 9년만에 결단
매년 4만 마리·1마리 295만원, 130억달러 도박판 떠받쳐
납치·살해 사건까지 얽힌 '검은 산업'에 美의회도 입법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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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한 투계장에서 닭싸움에 나설 수탉의 다리에 날카로운 칼날이 장착돼 있다/AFP 연합뉴스
대한항공이 미국발 필리핀행 노선의 수탉 운송을 중단했다. 매일 수천만 달러가 오가는 필리핀 투계(鬪鷄) 도박 산업에 미국산 싸움닭을 공급해온 통로로 지목되자, 미국 동물권 단체의 수개월 압박을 받아들인 결과다.

2일(현지시간) AF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발 필리핀행 노선의 수탉 운송을 연령에 관계없이 모두 중단했다"며 "관련 법규에 따라 살아있는 동물의 합법적이고 안전한 수송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명에서 투계용 수탉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동물권 단체들은 자신들의 캠페인이 결실을 봤다고 평가했다.

미국 동물권 단체 애니멀 웰니스 액션(AWA)은 대한항공이 지금까지 불법 거래되는 싸움닭을 가장 많이 운송한 글로벌 항공사라고 지목해온 곳이다. 단체는 "수개월간의 조사와 직접 협의 끝에 대한항공이 필리핀행 수탉 선적을 모두 중단해달라는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 단체 조사에 따르면 미시시피·오클라호마·텍사스주 농장에서 키워진 미국산 투계용 수탉은 댈러스를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을 거쳐 마닐라로 들어가는 항공 운송 경로를 통해 매년 최소 4만 마리가 필리핀에 공급돼 왔다. 마리당 가격은 최고 2000달러(약 295만 원)에 이르고, 한 해 거래 규모는 수천만 달러대로 추산된다.

이런 거대 운송 수요의 배경에는 필리핀 투계 산업의 사행성이 자리 잡고 있다. 다리에 금속 칼날을 부착한 닭 두 마리가 1분도 안 돼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경기에 매일 수천만 달러가 베팅된다는 것이 업계 일각의 추산이다. 필리핀 정부 자료를 인용한 외신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온라인 투계 도박 베팅 규모만 130억 달러(약 19조 1880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투계장은 마닐라 같은 대도시는 물론 지방 곳곳에 1만여 곳이 흩어져 있다는 것이 현지 추산이다.

거대 도박판은 그늘도 짙다. 필리핀에서는 2021~2022년 승부조작 의혹과 얽혀 사라진 투계 관계자 34명에 대해 게이밍업계 거물과 현직 경찰관 15명 등이 납치·살해 혐의로 기소됐고, 올해 1월 추가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이 사건이 알려진 뒤로 필리핀 사회에서는 투계가 단순 전통놀이가 아니라 조직범죄와 얽힌 산업이라는 인식이 확산했다.

필리핀 동물권 단체 페타(PETA) 대변인 자나 세비야는 AFP에 "대한항공의 결정은 분명히 투계를 겨냥한 것"이라며 "다른 항공사들도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환영했다. 그는 "투계는 전 세계 어디서나 불법이어야 한다"며 필리핀이 여전히 투계를 허용하는 소수 국가에 속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운송 중단의 파장은 필리핀 사육 농가들이 가장 먼저 체감할 전망이다. 필리핀 남부 타굼에서 닭 300마리를 키우는 사육사 에두아르도 에우헤니오는 AFP에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끊기면 큰 타격이 올 것"이라며 "닭 혈통 개량과 보급에서 미국인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의회에서는 항공편을 통한 성체 수탉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노 플라이트, 노 파이트' 법안이 발의된 상태로, 대한항공의 이번 조치는 같은 흐름의 첫 민간 호응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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