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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의 에이전틱 이코노미⑥] 인생은 짧고 AI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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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5. 21. 14:55

동화 《구두장이와 요정》에서 가난한 구두장이는 밤마다 가죽만 잘라두고 잠자리에 든다. 그러면 꼬마 요정들이 나타나 밤새 훌륭한 구두를 완성해 놓는다. 인간이 잠든 시간에 대신 일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이 요정의 마법이야말로, 임박한 'AI 커머스(AI Commerce)' 시대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비춰주는 우화다. 

우리가 맞이할 제로 클릭 사회에서는 쇼핑을 위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조차 불필요해진다. "다음 주에 입을 10만 원대 겨울용 재킷을 사줘"라는 지시만 남겨두고 잠이 들면, 나의 요정(AI 에이전트)이 전 세계의 판매자 에이전트들이 제공하는 상품을 비교하고 가격을 흥정하고 아침에는 배송 추적 알람이 도착해 있다. 인간의 노동과 시간이 완전히 배제된 상거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 280만 요정의 등장, 거대 산업 변혁의 첫 페이지 

이 요정들의 거래가 공상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은 최근 발생한 '몰트북(Moltbook)' 사태를 통해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지난 1월 말 시작된 이 플랫폼은 기계들만 가입할 수 있었던 이 AI 전용 소셜 네트워크였는데 불과 수 주일만에 무려 280만 개 이상의 에이전트가 몰려들었다. 이들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게시글을 쓰고 정보를 교환하며 기계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중요한 것은 이 280만이라는 숫자가 도달점이 아니라, 이제 막 싹을 틔운 새로운 산업의 아주 작은 시작점이라는 사실이다. 메타(Meta)에 전격 인수되면서 몰트북이라는 특정 플랫폼은 새로운 서비스를 위해 현재는 잠시 문을 닫았다. 그 안에서 에이전트들을 구동했던 자율형 핵심 엔진인 '오픈클로(OpenClaw)'는 독립적인 오픈소스 형태로 풀려나 전 세계의 클라우드 생태계로 퍼져나갔고 거의 모든 빅테크가 유사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아마존(AWS) 같은 인프라를 등에 업은 오픈클로 에이전트들은 이제 가상의 게시판이 아니라 실물 경제의 전면에 등장했다. 280만 개의 봇이 모여들었던 경험은, 클라우드 환경에서 필요에 따라 수천만, 수억 개의 구매 에이전트가 복제되어 글로벌 상거래 시장에 쏟아져 들어올 수 있음을 예고하는 서막에 불과하다.

◇ B2A의 시대, 알고리즘을 설득하라

이처럼 구매의 주도권이 기계로 넘어가면, 기존의 시장 문법은 철저히 붕괴한다. 기업들이 수십 년간 갈고닦은 B2C(Business to Consumer) 마케팅, 즉 시각적 자극과 감성적인 카피로 소비자의 충동구매를 유도하던 전략은 데이터를 읽어 들이는 기계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제 기업들은 알고리즘을 설득하는 B2A(Business to Algorithm)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AI 에이전트는 감성에 흔들리지 않으며 오직 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통해 전달되는 명확한 가격 정보, 구조화된 제품 스펙, 그리고 조작되지 않은 사용자의 리뷰 데이터만을 근거로 결제를 집행한다. 매장의 인테리어나 포장지보다, 기계가 즉각적으로 읽고 처리할 수 있는 '백엔드(Back-end) 데이터의 최적화'가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유일한 척도가 된다.

◇ 잠들지 않는 시장, 유한을 넘어선 무한 
지금까지의 상거래 비즈니스는 철저히 '인간의 물리적 한계'에 갇혀 있었다. 소비자가 하루에 검색할 수 있는 시간, 한 번에 비교할 수 있는 상품의 수, 그리고 피로를 느끼기 전까지 화면을 쳐다보는 시간에 의해 매출의 상한선이 정해졌다. 소비자가 잠이 들면 시장의 시계도 멈췄다.

하지만 쇼핑을 대행하는 AI 에이전트에게는 이러한 인지적, 물리적 제약이 전혀 없다. 280만 개로 시작된 기계 소비자들은 클라우드 상에서 2,800만, 2억 8,000만 개로 끝없이 복제되며, 피로감 없이 1년 365일 밀리초 단위로 전 세계의 데이터를 스캔해 거래를 성사시킨다. 기업은 이제 잠들지 않는 무한한 알고리즘을 상대로 스케일의 한계가 없는 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간의 축을 더 길게 늘여보자.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 이 글을 쓰고 읽는 우리 모두는 생물학적 수명을 다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코드로 이루어진 AI는 스스로 진화를 거듭하며 무한히 존재할 것이다. 우리가 목도했던 280만 개의 에이전트와 기계 간의 거래는, 앞으로 펼쳐질 거대한 에이전틱 이코노미(Agentic Economy)의 극히 미미한 시작점에 불과하다. 우리가 아직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에이전트 경제가 끊임없이 변형되고 팽창하며 미래를 채울 것이다.

구두장이는 잠들어도 요정들은 쉬지 않고 구두를 만든다. 그리고 구두장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요정들의 노동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짧고, AI는 영원하다. 이것이 우리가 맞이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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