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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없는 자연으로’… AI 시대 봉화 누정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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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장성훈 기자

승인 : 2026. 05. 21. 09:19

스마트폰 알림 대신 계곡 바람… 봉화 누정 기행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 고즈넉한 휴식공간 제공
한수정
한수정/봉화군
봉화군
한 청년이 신선이 사는 마을인 '청하동천'으로 들어가고 있다. /봉화군
초거대 AI와 스마트폰 중심의 생활이 일상이 된 가운데, 경북 봉화의 전통 누정(樓亭)이 디지털 피로에 지친 현대인들의 새로운 휴식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21일 봉화군에 따르면 봉화의 누정은 단순한 옛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학문과 사색을 이어갔던 선조들의 생활 공간이다. 최근에는 '디지털 디톡스'와 '쉼'의 가치가 확산되면서 이 같은 전통 공간을 찾는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명승 석천계곡에 자리한 석천정사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전해진다. 옛 선비들이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할 때, 밤마다 도깨비들이 몰려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공부를 방해했다는 기록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스마트폰 알림'과도 닮아 있다.

이에 권두응(1656~1732)은 계곡 입구 바위에 '청하동천(靑霞洞天,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글자를 힘차게 새겨 넣었다. 신선의 권위로 도깨비(잡념)를 물리치겠다는 이 단호한 의지는, 디지털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고 깊은 몰입(Deep Work)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했던 선조들의 '디톡스' 현장이었다.

봉화군 관계자는 "석천계곡은 예부터 자연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학문을 닦던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청암정
청암정/봉화군
닭실마을의 청암정에는 효율보다 가치를 우선시했던 인문학적 결정의 순간이 담겨 있다. 1526년 건립 당시, 원래 이곳은 여느 정자처럼 따뜻한 구들을 놓은 '방'이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거북 형상의 암반 위에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의 등에 불을 놓는 것과 같다"는 조언을 듣고, 선조들은 과감히 구들을 뜯어내고 차가운 마루방으로 개조했다.

또 정자 앞에는 연못을 조성해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봉화 지역 유림 문화의 자연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춘양면에 있는 보물 한수정(寒水亭)도 대표적인 전통 정자 가운데 하나다. '찬물처럼 맑은 정신으로 학문에 임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한수정은 400년 된 느티나무와 연못, 돌다리 등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T자형 구조의 한수정은 계곡 바람이 자연스럽게 통하도록 설계돼 여름철에도 시원한 환경을 제공한다. 방문객들은 와룡연에 비친 풍경과 정자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안시근 청량산관리사무소장은 "AI가 우리 삶의 편의를 제공한다면, 봉화의 누정은 우리 삶의 의미를 채워주는 곳"이라며 "이번 주말, 스마트폰 전원을 잠시 끄고 도깨비가 사라진 석천계곡과 거북이가 쉬어가는 청암정, 그리고 마음을 씻어내는 한수정에서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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