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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기자

승인 : 2026. 05. 21. 13:37

4~5월에만 韓다큐 5편 개봉…해외 포함시 7편으로 늘어나
12.3 비상 계엄·탄핵이 많은 영화인들에게 창작 영감 제공
극영화 불경기도 열풍 거들어…질 낮은 정치 다큐는 경계
다큐멘터리 '남태령'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 '남태령'이 20일 개봉했다. 지난해 농민 단체가 탄핵 인용을 주장하며 트랙터를 타고 상경하는 과정이 시간 대별로 재구성된 이 다큐멘터리는 농민과 성 소수자의 연대도 다루고 있다./제공=시네마 달
극장가에 다큐멘터리가 넘쳐나고 있다.

21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란 12.3'이 독립·예술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상영 한 달여 만에 24만 관객을 불러모은 가운데, 이달 초 끝난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 '남태령'과 '1026: 새로운 세상을'이 지난 20일 나란히 개봉하는 등 4~5월에만 5편의 국내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여기에 일본 애니메이션과 대중 음악을 상징하는 두 거장의 작품 철학과 말년을 각각 조명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까지 포함하면 이 기간 관객들과 만난 다큐멘터리는 7편으로 늘어난다. 흥행작들이 많지 않은 극장가의 비수기란 점을 감안해도 꽤 많은 편수다.

국내 다큐멘터리는 질적 상승도 함께 이뤄지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진출작 10편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편이 다큐멘터리였던 것이 좋은 예다. 양적 증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예년에 비해 많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이 같은 흐름은 웬만한 영화보다 더 영화같았던 최근의 국내 정치 상황에서 우선 비롯됐다는 게 여러 영화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국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꼽히는 이명세 감독이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 계엄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스크린에 옮긴 '란 12.3'과 농민 단체가 탄핵 인용을 주장하며 트랙터를 타고 상경하는 과정이 시간 대별로 재구성된 '남태령'처럼, 12.3 비상 계엄과 헌정 사상 두 번째로 인용된 탄핵이 기성과 신인을 막론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영화인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독립·예술 영화로 출발한 한 영화 프로듀서는 "한 세대에 한 번 겪을까 말까한 대사건들이 불과 1~2년 사이에 연달아 일어났다"며 "카메라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다큐멘터리 연출자들 처지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소재와 현장이 없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급격하게 위축된 한국 영화 산업 역시 다큐멘터리 열풍을 거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객 감소에 따른 투자 환경의 악화로 극영화 제작 편수가 줄어들자 재능 있는 예비 감독들은 물론, 이명세 감독 같은 베테랑 영화인들까지 다큐멘터리로 눈을 돌리면서 만듦새가 뛰어난 작품들이 이전보다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영작 선정을 책임지고 있는 문석·문성경·김효정 프로그래머는 "올해 한국경쟁 부문에 출품된 극영화들은 줄어든 작품수와 더불어 전반적인 수준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면서 "반면 다큐멘터리들은 비상 계엄과 탄핵 같은 '거대 서사'를 다룬 작품이 아니더라도, 거침없으면서 신중한 태도로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등 눈에 띄게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보수와 진보 등 특정 진영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다큐멘터리가 덩달아 늘어나면서, 극장이 정치 선전 및 선동의 장으로 자칫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선보였던 국내 다큐멘터리들 가운데 몇몇 작품의 경우, 사실 왜곡을 서슴지 않는 등의 그릇된 접근 방식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감을 조성해 사회적 갈등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또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복합상영관들이 예전처럼 여러 조건을 꼼꼼하게 따져가며 상영작을 고를 수 없는 상황 역시 수준 미달의 정치 다큐멘터리들이 극장가에 범람하고 있는 이유들 중 하나로 꼽힌다.

하철승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문학과 함께 영화, 그 중에서도 특히 다큐멘터리는 장르의 특성상 정치와 이념 등을 다룰 때 프로파간다(선전)로 흘러가기 쉽다"며 "'제 아무리 훌륭한 정치적 주장이 담겼다 하더라도 예술적 성취가 우선'이라고 박찬욱 감독이 얼마전 칸 국제영회제에서 밝힌 경쟁 부문 심사 기준을 국내 다큐멘터리 제작자들과 연출자들이 경청하지 않는다면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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