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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장애인 고용률 52%의 기적, ‘입찰’ 벽에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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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은 기자

승인 : 2026. 05. 21. 16:41

혁신 기술로 장애인 자립 일궜지만…'수의계약' 외면하는 공공조달 현장의 민낯
"보여주기식 격려보다 절실한 건 제도 개선"…장애인기업 대표들이 마주한 차가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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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권 중기부 제2차관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장애인 기업인 도서출판점자를 찾아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오세은 기자
21일 서울 중구의 도서출판점자. 이곳은 전체 직원 63명 중 33명이 장애인 근로자로, 장애인 고용률 52%를 달성한 명실상부한 '사회적 가치 실현의 현장'이다. 이날 현장을 찾은 이병권 중소벤처기업부 제2차관을 향해 김동복 대표는 화려한 격려사 뒤에 가려진 장애인기업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차관의 말에, 현장에서는 '답답한 제도'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김 대표가 토로한 첫 번째 벽은 '공공 조달 시장'이었다. 장애인기업 생산품 우선구매 제도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체감하는 환경은 '입찰 전쟁'이나 다름없다. 김 대표는 "기술력을 갖추고 장애인 생산 등록까지 마쳤음에도, 정부와 공공기관은 여전히 경쟁 입찰만을 고집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경쟁 입찰 시 장애인기업에 대한 정량평가 가산점 부여는 물론, 수의계약 활성화가 절실하다"고 건의했다. 여성기업 등에 제공되는 가산점 혜택마저 장애인기업에게는 문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 차관은 담당 과장에게 개선 방안 검토를 지시했으나, 현장에서는 "감사가 무서워 수의계약을 기피하는 공공기관의 경직된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공염불"이라는 냉소 섞인 반응이 나온다.

교과서 보급 체계의 허점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초등 교과서는 100% 점자로 발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가 주도형 제작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제때 교과서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김 대표는 "수요가 발생하면 제작에 들어가는 현 구조에서는 공급 지연이 불가피하다"며 "국가 주도의 전문 센터가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 한,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학습권은 계속 방치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교한 지도와 복잡한 그래픽이 요구되는 초등 교과서 제작에 52시간 근무제마저 겹쳐, 기업은 기술 혁신보다 규제 준수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김 대표는 장애인기업 대표자가 직접 겪는 경영상의 고충도 토로했다. 중증 장애를 가진 대표가 안정적인 경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고용 지원을 넘어, 업무 전반을 보조할 수 있는 파격적인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차관은 "1인 기업 대상 예산 사업을 올해 처음 시작했다"고 답했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스타트업 수준의 단기 지원으로 3~5년 차 이상의 성장기 기업들이 겪는 임대료와 보증료 부담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실제 김 대표는 성수동의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이곳으로 사업장을 옮겨야 했다.

간담회 내내 김 대표는 '상생'과 '가치 확산'을 강조했다. 한글점자 선포 100주년을 맞아 대기업과 장애인기업의 협력 사례를 발굴하고, 이를 통해 공공기관 담당자에게도 보상을 주는 과감한 포상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병권 차관은 "장애인기업의 노고에 감사하며 든든한 동반자가 되겠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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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권 중기부 제2차관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장애인 기업인 도서출판점자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오세은 기자
오세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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