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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이 놓은 다리, 한일 미술 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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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6. 06.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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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로드 무비' 개최
43팀 200여 점 통해 교류와 연대의 역사 조명
백남준 바이 바이 키플링
백남준의 '바이 바이 키플링' 중 한 장면. /국립현대미술관
1986년 백남준은 서울과 도쿄, 뉴욕을 위성으로 연결했다. 한국의 전통춤과 미국의 대중음악, 일본의 전위예술이 실시간으로 한 화면에서 만난 프로젝트 '바이 바이 키플링'이다.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며 둘은 결코 만날 수 없다"는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유명한 문장을 정면으로 뒤집은 이 작품은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은 바로 이러한 만남과 교류의 역사를 조망하는 전시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광복 이후 80년 동안 이어져 온 양국 미술가들의 교류와 연대의 흔적을 43명(팀)의 작품 200여 점을 통해 보여준다.

전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3월까지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에서 먼저 열려 3만7000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요코하마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백남준, 이우환, 이불, 정연두, 다나카 고키, 다카마쓰 지로, 무라카미 다카시 등 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참여했다.

전시의 중심에는 백남준이 있다. 1950년대 일본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그는 이후 일본 전위예술계와 활발히 교류하며 평생의 동반자이자 예술적 협업자였던 구보타 시게코를 만났다. 이번 전시에서는 '바이 바이 키플링'과 함께 백남준이 34년 만에 한국을 찾았던 여정을 기록한 구보타 시게코의 영상 작품 '브로큰 다이어리: 한국 여행'도 만날 수 있다.

전시전경_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그러나 전시는 유명 작가들의 교류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첫 섹션 '사이에서: 재일조선인의 시선'은 광복 이후 일본에 남아 활동한 재일조선인 예술가들의 삶에 주목한다. 조양규의 '밀폐된 창고'는 노동 현장의 어둡고 폐쇄적인 공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재일조선인의 현실과 분단의 상처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국교 정상화 이후 본격화된 미술 교류의 흐름도 살펴볼 수 있다.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과 다카마쓰 지로, 스가 기시오 등 양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한일 현대미술의 궤적을 보여준다. 나카무라 마사토, 무라카미 다카시, 이불 등 젊은 세대 작가들의 협업 사례는 1990년대 이후 교류가 제도 중심에서 개인 네트워크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불의 '사이보그 W5'는 미래적이면서도 불완전한 신체를 통해 인간과 기계,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시대 감각을 드러낸다. 기술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1990년대 이후 한일 미술 교류가 공유해온 문제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불, 〈사이보그 W5〉, 1999, FRP에 에바 패널, 폴리우레탄 코팅, 150 × 55 × 90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불의 '사이보그 W5'.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마지막은 과거의 교류를 넘어 오늘날의 연대로 시선을 옮긴다. 다나카 고키의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부터 최근 혐한 시위까지를 연결하며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돌아본다. 정연두의 '마술사와의 산책'은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풍경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전시는 실내 전시장뿐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야외조각공원으로도 이어진다. 곽덕준, 곽인식, 이우환 등 일본 거주 한국 작가와 일본 작가들의 조각 작품 6점을 통해 과천관이 한일 미술 교류의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조명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두 나라가 경험한 역사적 순간들과 그 속에서 형성된 미술 교류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자리"라며 "한일 현대미술의 위상과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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