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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文香世談] 올여름, 잠시 고양이처럼 살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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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7. 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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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교육평론가
떠나는 계절이다. 사람들은 일정표와 이정표를 따라 숲과 계곡, 푸른 바다로 향한다. 한때 여름은 낭만과 해방의 동의어였다. 그러나 임계점을 넘어선 폭염이 일상이 된 지금, 휴가의 정의는 새롭게 쓰이고 있다. 서늘한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활자를 탐독하고, 정적의 공간에 머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자연의 표정이 변하자 쉼을 누리는 문법도 달라진 것이다.

공간의 좌표를 옮긴다고 진정한 안식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육체는 일상의 궤도를 벗어났지만, 정신은 여전히 과부하 상태인 이들이 적지 않다. 절경 앞에서도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에 머물고, 풍경을 온전히 느끼기보다 셔터를 누르며 순간을 기록하는 데 더 익숙하다.

휴식마저 경쟁이 되고, 조용한 쉼조차 타인의 인정을 의식하는 시대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낯선 목적지나 항공권이 아니라, 익숙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인지도 모른다.

문득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떠오른다.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그는 서구화와 산업화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불안과 허영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응시했다.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더 조급해졌고, 지식은 늘어났지만, 삶의 지혜는 깊어지지 못했다. 소세키는 시대의 모순을 이름 없는 고양이의 입을 빌려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드러낸다.
소설은 일본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고양이다. 아직 이름은 없다." 이름조차 없는 길고양이는 우연히 영어 교사 구샤미의 집에 머물며 인간 세상을 관찰한다.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모여 철학과 예술을 논하지만,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은 생각보다 우스꽝스럽다.

자신은 누구보다 이성적이라고 믿지만, 체면과 허영, 인정 욕구에 쉽게 흔들린다. 소세키는 가장 낮은 존재인 고양이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허세를 비추면서도 그 속에 연민과 따뜻한 유머를 담는다. 독자는 웃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의 허세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게 된다.

120년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그 속에 담긴 풍경은 오늘 우리의 일상과 놀라울 만큼 닮았다. 사람들은 더 많이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꾸미고, 남보다 앞서기 위해 끊임없이 비교한다.

여행도, 독서도 삶을 풍요롭게 하기보다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수단이 되기 쉽다. 소세키가 풍자했던 허영은 시대를 달리해 디지털 공간으로 무대를 옮겼을 뿐이다. 기술은 눈부시게 달라졌지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은 조금도 낯설지 않다.

프랑스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세상을 알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차분히 들여다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람은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잃기 쉽고, 끊임없는 분주함 속에서는 참모습을 발견하기 어렵다. 소세키의 고양이는 분주히 뛰어다니지 않는다.

말없이 앉아 인간을 바라보고, 서두르지 않은 채 세상의 소음을 관찰한다. 어쩌면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세상을 이해하는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그 멈춤의 지혜는 동양에서도 오래전부터 강조됐다. '도덕경'에는 "흙탕물도 가만히 두면 저절로 맑아진다"라는 가르침이 있다. 물을 억지로 휘저을수록 더 탁해질 뿐이다. 마음도 그렇다.

너무 많은 정보와 경쟁, 속도에 자신을 몰아붙일수록 삶의 본질은 흐려진다. 잠시 멈추고 바라볼 때 비로소 무엇이 중요한지 또렷하게 드러난다.

일전에 도서관 창가에 앉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다시 펼쳤다. 창밖에서는 매미 소리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뜨거운 햇살은 느티나무잎 사이로 부서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지만,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그 공간만큼은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한 페이지씩 읽어 내려가다 보니 휴가란 반드시 멀리 떠나는 일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늦추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은 뜨거웠지만 마음으로는 오랜만에 잔잔한 바람이 불어왔다.

프랑스 철학자 장 그르니에는 산문집 '섬'에서 "세상과 단절되어서도,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잃어서도 안 된다"라고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세상과 자신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지킬 때 가능하다. 그 거리는 고립이 아니라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여백이다.

소세키의 고양이 역시 인간들 한가운데 살면서도 늘 한 걸음 떨어져 그들을 바라본다. 그 거리가 있었기에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웃음 속에서 꿰뚫어 볼 수 있었고, 그 냉철한 시선은 단순한 비난을 넘어 깊은 성찰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 여백 속에서 사람은 자신을 잃지 않은 채 세상과 다시 만날 수 있다.

여름은 본래 밖으로 향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갈수록 길어지는 폭염은 우리에게 또 다른 휴가를 제안한다. 멀리 떠나야만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원한 그늘에서 한 권의 고전을 읽고, 조용히 산책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도 알차고 아름다운 여행이 될 수 있다. 휴가는 몸을 쉬는 것을 넘어 삶의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올여름 잠시 고양이의 느긋한 걸음걸이를 닮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세상의 소란에서 한 발짝 비켜서서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겠다. 모니터 속 끝없는 경쟁에서 벗어나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고, 침묵을 벗 삼아 흐려진 마음을 맑게 가라앉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건네는 유쾌한 풍자는 웃음을 지나 마침내 우리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조용한 권유이기도 하다. 고양이처럼 천천히 걷는 그 시간은 세상을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잊고 지냈던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여행이 될 것이다.

윤일현 (시인·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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