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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96兆원 베트남 북남고속철, 한국이 줄 수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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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6. 08. 03.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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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북부 닌빈역. 수도 하노이시로 향하는 열차가 선로로 진입하고 있다. /닌빈 정리나 특파원
정리나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베트남 수도 북부 하노이에서 출발해 남부 호치민시로 향하는 통일열차를 타면 32시간에서 37시간이 걸린다. 1726㎞를 이틀 가까이 달리는 셈이다. 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논과 어촌과 하이번 고개를 지나는 이 노선을 여행객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 여행 중 하나로 꼽는다. 하지만 이건 여행자의 감상이다. 그 길을 오가야 하는 베트남 사람에게 이 열차는 낭만이 아니라 불편이다.

느린 이유는 선로에 있다. 이 철도는 프랑스 식민정부가 1899년부터 1936년까지 37년에 걸쳐 깔았다. 궤간은 1m, 전 구간 단선이다. 90년 전 식민지 물자 수송을 위해 설계된 규격 위를 2026년에도 여전히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름은 '통일열차'다. 1954년 제네바 협정으로 국토가 쪼개지며 철도도 히엔르엉 다리를 경계로 남북이 끊겼다. 전쟁 동안 그 다리는 양쪽의 포격 표적이었다. 1975년 4월 사이공이 함락되고, 이듬해인 1976년 12월 31일 폭격으로 부서진 선로가 복구돼 열차가 다시 남북을 오갔다. 끊겼던 길이 이어지던 그날의 감격이 이름에 남은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것'과 '가까워진 것'은 다르다. 통일 이후 반세기 동안 베트남은 이 낡은 선로를 제대로 바꾸지 못했다. 전쟁이 남긴 상처가 컸고, 투자할 돈이 없었다. 열악한 시설은 건널목 사고와 탈선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남북을 잇는 척추가 하나뿐인데 그 척추가 굽어 있는 상태로 50년을 버틴 셈이다.

그래서 올해 말 착공하는 북남 고속철도는 베트남 국민에게 단순한 교통 인프라만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2035년 완공이 목표다. 사업비는 670억 달러(96조 8820억원). 하노이와 호치민시를 1541㎞로 잇고 34개 성·시 가운데 20곳을 시속 350㎞로 달린다. 식민지 시대의 궤도를 걷어내고 제 손으로 제 나라의 척추를 다시 놓겠다는 것, 그것이 베트남이 이 사업에 부여한 의미다. 재원을 외국 차관이 아니라 국가 예산 중심으로 조달하겠다는 방침에도 그런 자존심이 배어 있다.

지난달 30일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하노이에서 또 럼 베트남 공산 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을 만나 이재명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우리 기업이 타당성조사 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럼 서기장은 실질적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싶다고 답했다. 31일에는 제1차 한-베 철도협력회의가 열렸다. 인프라 외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이 이 사업에 참여한다면 그 의미는 수주액에 있지 않다. 한국은 식민 지배를 겪었고, 전쟁으로 국토가 갈라졌고, 남의 돈과 기술로 시작해 결국 제 손으로 고속철을 굴린 나라다. 베트남이 지금 건너려는 다리를 한 세대 앞서 건넜다는 뜻이다. 기술 이전과 전문인력 양성, 역세권 개발까지 함께하자는 제안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경험을 파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자세여야 한다.

조립 공장을 유치하고, 시장과 소비자로만 남는 데 만족하지 않겠다는 것이 요즘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의 화두다. 베트남이 지금 찾는 것은 궤도를 놓아줄 나라가 아니라, 궤도를 놓는 법을 함께 익힐 나라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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