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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칼럼]아름다움(美)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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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용 기자

승인 : 2011. 12. 1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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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최정호성형외과 원장(의학박사)
최정호 최정호성형외과 원장(의학박사)
[아시아투데이=이순용 기자] 예쁘다’라는 말과 ‘아름답다’란 말을 혼용하기도하지만 보통 ‘예쁘다’라는 말은 물건이나 여자의 형태를 지칭할 때 많이 사용한다. 물론 ‘아름답다’역시 비슷한 의미로 쓰이지만, 우리는 ‘정의로운 행동’ 이나 ‘선함’ 혹은 ‘진리’에 대해서도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아름다움’은 도(道)나 덕(德), 중용(中庸)의 개념을 포함한다. 추상명사는 고래(古來)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표와 기의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서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 ‘정의’와 ‘해석’에 변화를 가져왔다. 미(美)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제는 미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 수천 년에 걸친 깊고 넓은 탐구의 역사와 내용을 담고 있다. 미(美)가 가지는 역사적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는, 필자의 능력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방대한 작업은 미학자나 철학자에게 맡기고 서투른 항해사로서 필자가 마주친 ‘아름다움’의 개념변화의 특별한 결정적 계기의 이정표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형외과의사로서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고 수술로써 개선시키고자 하는 직업적 필요에 의해 아름다움의 기준을 찾고자 했지만 미의 공식이 구체적인 계측수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의 마음속에 있는 미적 감각 혹은 판단에 있음을 알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아름다움’의 속성이 객관적인 사물에 있다는 오래된 믿음은 인체의 아름다움이 적절한 비례에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피타고라스는 현들의 음이 길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주목하고 음향학에서 수학적 질서를 세웠다. 현들의 길이가 직접적인 수적 비율을 이루고 있으면 조화로운 음을 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조화는 부분들의 수학적 관계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는 "조화는 미덕이다. 건강과 모든 선 그리고 신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물들 역시 조화에 따라 구성된다."고 하였다. 만물은 질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수학적 법칙의 구현으로 질서를 인식하고자했다. 조화는 수, 척도, 비례에 의존하는 수학적 배열상태라고 인식한 피타고라스학파의 철학은 규칙성이 조화와 미를 보증해준다는 그리스적 신념을 강화시켰다.

그리스인들은 측량될 수 있고 규칙적이며 명료하고, 질서와 규칙성을 구현하는 사물들만 이해 가능하다고 여겼다. 이해 가능한 것만이 이치에 맞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이치에 맞는 것만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이치에 맞는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은 질서 잡히고 규칙적이며 유한한 것이고, 불규칙하고 무한한 사물들은 혼돈, 불가해한 것으로 선할 수도 아름다울 수도 없는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믿음은 그리스인들에게 초기부터 구체화되어있었고 그들의 철학 속에서 진술되고 있었다. 이러한 전승에 피타고라스학파는 견고한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사실상 피타고라스학파의 위대함은 이집트방식을 체계화하고, 논리화하였다는데 있다. 이집트인은 수천 년 동안 불멸의 세계를 추구하는 종교적 믿음으로 수학과 기하학을 비롯한 학문의 체계를 세웠고 그리스와 소아시아지역에 태동한 문명에 자양분이었다.

 


아르카디아에도 나(죽음)은 있다. -니콜라 푸생, (1594-1665)
고귀해 보이는 여인이 목동들에게 석관위에 새겨져 있는 글씨를 읽도록 권하고 있다. 아르카디아는 그리스의 이상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도 죽음은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인식하는 것이 덕의 근본으로 여긴 서구의 지적풍토였다. 푸생은 회화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이성’에 의해 반듯이 설명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쾌한 구성과 수학적 비례가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그의 그림은 그가 대표적인 고전주의자이며, 주지주의적 객관주의 미학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설명)



학자들은 기원전 수 천 년 전에 그려진 이집트의 벽화에서도 그려진 신체의 비율이 일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미술역사학자들은 이집트의 화가들을 ‘지도 제작자’ 같다고 표현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우연한 각도에서보이는 대로의 모습을 그리지 않고 그림에 들어가야 할 모든 것이 극명하게 나타나도록 보장해주는 엄격한 규칙에 따라 그렸다. 그들이 인체를 그릴 때, 머리는 옆에서 보여 질 때 가장 정확하고 세밀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옆모습을 그렸다. 눈은 정면에서 본 것이 가장 잘 기억이 나기 때문에 정면에서 본 눈이 얼굴의 측면 그림에 그려져 있다. 신체의 상반신 즉 가슴과 어깨는 정면으로 그렸고 팔다리는 측면을 그렸다. 또한 모눈종이에 그림을 그리듯이 다리의 길이부터 몸의 모든 부분을 일정 비율을 유지했다. 


이집트인들은 ‘보이는’ 것이 아닌 ‘기억된’ 것을 그렸다. (그림 설명)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기묘한 모습의 이집트그림을 그들은 그림의 규칙으로 수 천 년 동안 유지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원함과 완전함이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인에게 왕의 조각은 그들이 계속 ‘살아 있도록’이라는 목적에 충실해야하는 작품이었다. 수천 년 간 변하지 않았던 왕정체제처럼 그들은 엄격한 규칙을 바꾸지 않았다.

이집트에게서 배운 아테네는 이를 발전시켜 인체의 황금비율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것을 캐논(규칙)으로 삼아 예술의 규범으로 삼았다. ‘모든 것의 근원은 수’라고 주장했던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을 따랐던 그리스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기하학과 천문학을 일반화 하였다.

초기의 이집트 양식에서 미술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혁명으로 불리는 ‘자기의 방법’을 시도한 기원전 6 세기 즈음의 그리스 인들은 처음으로 원근법에 의한 단축법을 발견하였다. 있어야 할 영원한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자연스러운 형태를 그리고자 하였던 아테네 미술은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고 아름다움의 본질을 추구했던 아테네 정신이 만들어 낸 ‘위대한 각성’ 이었다. 그리스 미술이 찬양받는 이유는 규칙의 준수와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의 자유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리스 미술은 역사상 민주주의가 최고봉에 도달했던 아테네의 정치체제에 덕분이다. 이때 그리스에서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생각’이 발견되어 과학과 철학이 시작되었다.

피타고라스는 ‘황금비율’에 의해 그려진 ‘별모양을 자신이 세운 학교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그들은 이 황금분할이 우주의 비밀이라고 생각했다. ’황금비율‘이라는 명칭도 그리스의 수학자 에우독소스에 의해 불려졌고 황금비율을 나타내는 파이도 이 비율을 조각에 적용했던 조각가 피디아스의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a+b):a=a:b는 황금분할을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파이(Phi)는 a:b=0.618:0.382의 근사치를 가진다. 이 비율은 아름다움이 그 자체가 지니는 아름다운 비율과 조화에 있다는 수학적 증거로 간주되었다. 연구자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부터 현대의 크레디트 카드까지, 행성의 배열부터 꽃잎과 나뭇잎의 잎차례에서 파이와 피보나치 수열을 발견한다. 황금비는 고대부터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간주되었고 식물과 동물 등의 자연세계에서부터 피라미드, 파르테논 신전, 석굴암,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등과 같은 건축물과 예술 속에서도 발견해낸다. 


르 코르뷔지에의 인체의 황금분활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는 그림처럼 목과 배꼽, 무릎에서 인체의 황금비를 발견해냈다. 그는 이러한 비율을 모듈러의 이론체계로 하여 ‘광장에서 책꽂이에 이르기까지 여하한 디자인에도 적용할 수 있는 척도’라고 설명했다. 플라톤에게 천동설의 수학적 기반을 제공했던 에우독소스부터 로마시대의 비트루비우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게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의 속성을 대상의 비율과 조화에서 발견해 온 전통은 미의 공식을 수학적으로 확정하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파이는 왜 인간에게 호감과 조화감을 줄까?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생명과 자연의 보편적 형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긍극에서는 진리와 아름다움이 만난다는 믿음을 강화시킨다. 그러나 황금비에 관한 신화는 기각되고 있다. 연역추리의 기반을 마련한 피타고라스학파가 수의 신비주의로 일관했던 과오를 후배들도 반복하고 있다. 수학은 초감각적인 지성계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켰고, 영원한 진리를 발견하고자하는 욕망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황금비율은 시간을 초월한 절대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동경이 만들어 낸 신기루였다. 진리의 규칙을 발견하고자 한 동경이 대상물에서 파이를 발굴해 냈던 것이다.

역사속의 위대한 예술가들은 수학적 원칙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이용하고자 했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천재적 영감을 수학적, 과학적 방법으로 구현함으로서 성공하고자 했다. 그러나 근대이후 ‘미’의 공식을 논하는 ‘미학자’는 실종되었다. 이 같은 현상은 ‘신’의 존재에 대한 ‘논증’이 철학과 과학에서 사라진 이유와 유사하다. 러셀의 ‘중국 차 주전자 논증’과 현대 무신론자의 ‘FSG’ (flying spagetti ghost)는 기독교가 직업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신’의 존재에 대한 ‘논리적 주장’을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렸던 대표적인 실례이다. 이제 기독교는 단순히 ‘믿음’이라는 닭장 속에서만 깨우침이라는 달걀을 낳고 마치 우주를 발견한 것처럼 요란을 떨 수 있게 되었다. 근대 이후 수학적 규칙성을 자연과 인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과 ‘미’의 공식이 이러한 수학에 있다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미’의 공식을 발견하고자하는 희망은 약삭빠른 연구자들에 의해 ‘새로운 황금비율’을 발견했다는 발표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미술은 미학의 구체적 표현 방법이다. 아름다운 사물의 본질은 조화로운 비례에 있다는 아테네인의 믿음을 ‘미의 대 이론’이라 부르는데 이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물론이고 근대 미학의 대반전이 있기 전 까지 주류이론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수학적 비례에 아름다움의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미적 판단’을 중시하게 된 것은 근대 미학자들의 기여덕분이다. 그들의 결론은 ‘아름다움’의 본질이 객관적 대상에서 미의 공식으로 유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형외과 의사로써 ‘미의 공식’을 찾고자 했던 오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미’의 주관화가 ‘미’의 지위를 하락시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 ‘아름다움’은 수학보다는 생물학에 근거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이다. <계속>

이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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