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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아들·제2의 JP’ 이완구 전 총리 별세… 향년 71세

‘충청의 아들·제2의 JP’ 이완구 전 총리 별세… 향년 71세

기사승인 2021. 10. 1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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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에 최연소 경찰서장
1995년 민주자유당 입당, 정계 첫 진출
1998년 자민련 입당… 대변인·원내총무 역임
2006년 충남지사 당시 '세종시 건설 수정안' 반발해 사퇴
2015년 박근혜정부 2번째 총리 임명
이완구 전 국무총리 별세
충청 출신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혔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별세했다. 사진은 이 전 총리가 1994년 충남지방경찰청장 시절 경찰헬기를 탄 모습./ 연합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세.

이 전 총리는 1950년 6월 2일 충남 홍성 태생으로 한때 ‘포스트 JP(김종필 전 총리)’로 불릴 정도로 충청권 출신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혔다.

고인은 성균관대 재학 중인 1974년 행정고시 15회에 합격 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일했다. 이후 경찰로 자리를 옮겨 31세에 최연소 경찰서장을 역임했다. 그는 1995년 2월 충남지방경찰청장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떠나 민주자유당(현 국민의힘)에 입당해 정계에 발을 디뎠다.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충남 청양·홍성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이어 1998년 김종필 전 총재가 이끌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 입당해 대변인을 거쳐 원내총무(원내대표)를 지냈다.

고인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충남도지사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엔 2009년 당시 이명박정부의 ‘세종시 건설 수정안’에 반발해 자진사퇴하기도 했다.

야인으로 지내던 고인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국회 재입성을 노렸으나 그 해 초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에 들어갔다. 이후 8개월 간 골수이식과 항암치료를 받고 병마를 이겨냈다.

고인은 박근혜정부인 2013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돼 여의도로 돌아왔다. 그는 2014년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활동하다 2015년 1월 박근혜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한때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취임한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아 ‘성완종 리스트’가 터져 불명예 퇴진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불거진 이른바 ‘성완종 로비명단’에 고인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고인은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명예를 되찾았지만 이후 정계에 돌아오지는 않았다.

지난해 총선 당시 대전 지역 출마를 모색하기도 했으나 “세대교체와 함께 인재 충원의 기회를 열어 주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며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 최근 병세가 악화돼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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