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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정은 수령제 포기하고 새 정치체제 설계하나

[칼럼] 김정은 수령제 포기하고 새 정치체제 설계하나

기사승인 2021. 12. 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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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석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사무총장·국민대 겸임교수
이흥석 사무총장
이흥석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사무총장·국민대 겸임교수
◇수령제와 제도적 불비(不備)
지금 북한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8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김정은주의가 등장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대한 개인적 찬양이 당규약에서 사라졌다. 특히 수령의 유고에 대비해 당 제1비서를 신설하면서 당 총비서의 대리인으로 지정했다. 역사적으로 북한은 수령 유고에 대해 당규약이나 헌법에 별도의 조항을 마련하지 않았다. 반신(半神)인 수령의 부재를 대비하는 것은 권력투쟁을 촉발할 개연성이 있어 세습 승계의 마찰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8차 당대회에서 역사적·제도적으로 변화를 택했다. 이 변화가 북한 김정은체제의 불안정성이 불거져 나온 후 시작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2019년 북·미 비핵화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나고 2020년부터 김정은의 중병설, 김여정의 위임통치설, 김여정의 쿠데타설 등 김정은의 안위와 김여정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 시기가 중복된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당 총비서의 대리인 당 제1비서
올해 1월 열린 8차 당대회에서 당 최고직위였던 당위원장을 당 총비서로 개정하고 김정은을 그 자리에 추대했다. 김정은이 2012년 4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제1비서,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당위원장으로 추대된 것을 뒤집은 결정이다. 2012년 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조선노동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한 것을 8차 당대회에서 삭제해 김정은을 당 총비서에 추대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했다. 김정은은 집권 10년을 맞아 8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선대 수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립 수령의 행보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정은의 정치적 위상을 제고하는 조치와 병행해 당 제1비서를 신설하고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으로 지정했다. 북한사전에 ‘대리인’은 “어떤 사람을 대신해 그가 지닌 권한과 의무를 맡아서 행사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당 제1비서는 당중앙군사위원장도 겸직해 군권도 장악할 수 있다. 당 제1비서를 임명하는 절차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당 총비서는 당대회에서 선출해야 하지만 당 제1비서는 사안에 따라 수시로 개최할 수 있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거할 수 있도록 제도화함으로써 최고지도자 유고에 대비해 후계체제를 임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렇다면 당 제1비서 즉 당 총비서의 대리인으로 선출되는 인물에 따라 북한 최고지도자의 권력이양 방식 즉 세습 승계에 대한 변화도 있을 수 있다. 8차 당대회 결과를 보면 당 제1비서에 대한 구체적 발표는 없었으나 다만 몇 가지 가능성은 예단할 수 있다.

가장 주목할 인물은 김여정이다. 김여정은 김정은의 여동생으로서 공식적인 직책은 당중앙위원회 위원·국무위원회 위원이지만 백두혈통이라는 상징적·실질적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특사 파견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결렬된 이후 대남·대미 메시지를 주도하는 가운데 특히 2020년 6월 대남 강경 메시지를 발표하고 3일만에 남북경협의 상징인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다.

다음으로 주목할 인물은 최룡해이다. 최룡해는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함께 했던 전 인민무력부장 최현의 아들이다. 8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선출되면서 당정군 2인자를 유지하고 있다. 비록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몇 차례 굴곡이 있었지만 가장 안정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북한이 역사적으로 혁명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상당 기간 당정군 주요 직위에서 관리 경험이 있는 최룡해는 당 제1비서로 적합한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백두혈통이 아니라는 점은 세습의 정통성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으나, 세습이 아닌 권력승계나 지도자의 공백을 해소하는 데는 적절한 카드로 볼 수 있다.

다른 대안은 김정은의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을 하고 김여정, 김경희 또는 최룡해, 조용원 등 다수의 엘리트가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김정은사상과 수령제의 변화
김정은은 신격화된 수령을 부정하고, 아버지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당규약에서 삭제하면서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유지를 하는 가운데 김정은사상과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위민(爲民)을 담론화하고 있다. 과연 김정은은 선대 수령이 물려 준 혁명전통을 거부하고 세습적 권력승계 방식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김정은은 수령제를 포기하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설계하고 있는가? 아니면 집권 10년을 맞이해 정치적 담론을 내세워 대내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담론에 머물 것인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만약 새로운 정치체제를 지향한다면 담론화 과정을 거쳐 이념화 단계를 지나 제도화로 넘어갈 것이다.

수령제 변화는 북한체제의 내구성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김정은의 건강 등 신변 이상에 달려있다. 북한이 당 제1비서를 제도적으로 도입한 것은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과 김여정 위임통치설이 나온 이후로 정황상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수령제의 변화는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진단하는 지표는 물론 포스트 김정은 후계체제를 전망하는 기제로 활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령제의 변화는 새로운 권력 승계방식을 요구하고 이에 따라 대안세력이 나타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안보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력이 있으므로 미·중간 패권경쟁, 북한의 비핵화 등 우리의 안보와 연계하는 전략적 혜안을 가지고 김정은체제의 변화를 조망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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