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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때] 항일 시인 윤동주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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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

승인 : 2015. 02. 1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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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
2015년 2월 16일은 잠실 제2롯데월드에서 출입문이 이탈하는 사고가 또 일어났고, 단지 주목받고 싶다는 이유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어묵’으로 비하해 모욕한 피의자 김모씨의 어머니가 유가족과 국민에게 공개사과를 하는 등 시끄러운 하루입니다. 그렇다면 과거 속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먼저 ‘서시’로 유명한 시인 윤동주가 해방을 몇달 앞둔 1945년 이날, 일본 규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꽃다운 청춘인 28세였는데요.

윤동주는 1917년 간도에서 태어나 용정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1938년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서울 연희전문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이후 1942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 윤동주는 일본 릿쿄대학에 적을 뒀다가 군국주의에 질려 한 학기만에 일본 쿄토의 도시샤 대학 영문과로 옮겼습니다.

이후 1943년 여름방학때 사상범으로 송몽규와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됐는데 죽음의 원인은 형무소에서 투여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로 감옥에 있는 조선 청년들에게 매일 강제로 투여됐습니다. 윤동주가 옥사한지 한달여만에 송몽규도 옥사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서시’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등은 사망 몇 년 전에 썼으나 발간되지 못하다가 1948년 유고 30편을 모아 발간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소개돼 세상에 알려졌는데요.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 그리고 절망을 극복하는 희망과 용기로 당시 일제에 의해 억압받는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을 담겨있습니다.

오늘 그의 서거 70주기를 맞아 국내외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데요. 그의 유품과 원고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지난 5일부터 후쿠오카, 교토, 도쿄 등 3개 도시에서 순차적으로 열리고 있고, 연세대 윤동주기념사업회는 신촌캠퍼스 루스채플에서 추모식과 시·산문 창작대회 시상식, 추모 공연을 진행합니다.

또 1927년 이날은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했습니다. 당시 라디오 청취료가 월 2원으로, 쌀 한 가마니 가격이 5원이었음을 생각하면 꽤 고가의 청취료였네요. 1937년은 미국 듀폰사가 ‘나일론’이라는 새로운 인조섬유로 특허를 획득했습니다. 이 인조섬유는 값이 싼 석탄, 공기, 물이 주원료여서 섬유시장에 가격혁명을 불러왔는데요. 1940년에는 나일론으로 만든 스타킹을 발매했습니다.

한편 2009년은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의료진에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으니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하네요. 2010년 이날은 모태범이 벤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한국 사상 첫 금메달을 땄습니다.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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