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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신춘호 회장은 1932년 울산 출생으로 1955년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2년 일본 롯데 이사로 근무하다 1965년 롯데공업을 창업했다. 이후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변경한 신 회장은 1992년부터 농심그룹 회장으로 새우깡·신라면 등 수많은 국민 브랜드를 직접 챙겨왔다. 무엇보다 신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대한민국 라면 신화를 만들어낸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한국에서의 라면은 주식이어야 한다”
신 회장은 1965년 창업 당시 라면시장에 진출하며 국내에서 쌀 공급이 부족한 점 등을 고려, 일본에서 간편식 개념인 라면을 ‘주식’으로 접근했다.
27일 농심에 따르면 당시 신 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며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제품이라면 우리의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범국가적인 혼분식 장려운동도 있으니 사업전망도 밝다”고 덧붙였다.
◇“연구개발 역량 경쟁에서 뒤지지 말아라”
신 회장은 ‘다른 것은 몰라도 연구개발 역량 경쟁에서 절대 뒤지지 말라’고 강조하며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운영하며 제품 개발에 역량을 쏟았다. 1971년 새우깡 개발 당시에도 “맨땅에서 시작하자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적재산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했다.
농심은 4.5톤 트럭 80여 대 물량의 밀가루를 사용하면서 새우깡을 개발해 냈다.
◇“매우니까 ‘신(辛)’이다”…브랜드 가치를 끌어 올리다
신 회장은 1986년 신라면을 출시하며 “저의 성(姓)을 이용해 라면 팔아보자는 게 아닙니다. 매우니까 간결하게 ‘매울 辛’으로 하자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신 회장이 브랜드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은 1970년 ‘짜장면’의 실패에서였다. 유명 조리장을 초빙해 요리법을 배우고 7개월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내놓은 국내 최초 짜장라면 ‘짜장면’은 출시 초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비슷한 이름으로 급조된 미투제품의 낮은 품질에 불만을 느낀 소비자들은 짜장라면 전체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결국 농심의 짜장면도 사라지게 됐다.
당시 신 회장은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모방할 수 없는 브랜드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해진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히트작품에는 신 회장의 이런 생각들이 반영됐다.
신 회장의 마지막 작품은 옥수수깡이다. 신 회장은 “원재료를 강조한 새우깡이나, 감자깡·고구마깡 등이 있고, 이 제품도 다르지 않으니 옥수수깡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옥수수깡은 지난해 10월 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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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이 라면을 처음 수출한 것은 창업 6년만인 1971년부터다. 지금은 세계 100여 개국에 농심이 만든 라면을 공급하고 있다. 농심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9억9000만 달러의 해외매출을 기록했다.
이런 성과에는 신 회장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신 회장은 “농심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 얼큰한 맛을 순화시키지도 말고 포장디자인도 바꾸지 말자. 최고의 품질인 만큼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확보하자. 한국의 맛을 온전히 세계에 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식품의 명품화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신 회장은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며 제품 고급화에 눈을 돌렸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2011년 출시한 프리미엄라면 신라면블랙이다. 신라면블랙은 출시 초기 규제와 생산중단 등을 겪었지만 지난해 뉴욕타임즈가 꼽은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올랐다.
신 회장은 자신의 책인 ‘철학을 가진 쟁이는 행복하다’를 통해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참 어렵게 꾸려왔다. 밀가루 반죽과 씨름하고 한여름 가마솥 옆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내 손으로 만들고 이름까지 지었으니 농심의 라면과 스낵은 다 내 자식같다”고 했다.
이어 “배가 고파 고통받던 시절, 내가 하는 라면사업이 국가적인 과제 해결에 미력이나마 보탰다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산업화 과정의 대열에서 우리 농심도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제는 세계시장을 무대로 우리의 발걸음을 다그치고 있다”며 “우리의 농심가족들이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 쌓아온 소중한 경험과 힘을,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순수하고 정직한 농부의 마음으로, 식품에 대한 사명감을 가슴에 새기면서 세계로 나아가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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