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시 매출액 39배·영업익 359배↑
"위대한 기업인 넘어 철학자·사상가"
재계, 이건희표 위기 극복법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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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이 회장 2주기를 맞아 재계에서는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삼성그룹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낸 이 회장의 위기 극복 DNA에서 해법을 모색하자는 추모의 움직임이 이어졌다.
변방의 2류 기업에 안주하던 삼성은 신경영 선언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당시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사장단을 불러 놓고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꾸라"며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어 그룹 경영 전 부문에 걸친 대대적 혁신을 꾀했다.
신경영 철학의 핵심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 반성'을 통해 변화 의지를 갖고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하는 데 있다. '질' 중심 경영은 '인재'와 '기술'이 열쇠라고 봤다. 양을 중시하던 기존의 경영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의 방향을 튼 것이다.
뼈를 깎는 혁신이 이어졌다. 수백억원 어치의 휴대폰을 쌓아놓고 불태워버린 '애니콜 화형식'은 지금도 회자된다. 임직원들한테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강행한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는데, 불량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등 효과는 확실했다.
1997년 한국 경제가 맞은 사상 초유의 IMF 위기와 2009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삼성이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이유다. 2021년 브랜드 가치는 746억달러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고 스마트폰·TV·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명실공히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이 회장은 학력과 성별·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이 회장은 비즈니스에 있어 남들보다 몇 수 더 앞을 내다봤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고 한국과 세계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해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 사업에 착수했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K D램을 개발하고, 4기가 D램·64기가 낸드플래시 개발·30나노급 4기가 D램·2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 및 양산까지 줄줄이 세계 최초 기록을 써나갔다. 그 결과 삼성은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이 회장의 선견지명과 리더십으로 취임 당시인 1987년 10조원 수준이던 삼성의 매출액은 30년이 지난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폭증했다. 또 영업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359배,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외신들은 2020년 10월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삼성을 혁신기업으로 만든 선구자(로이터)', '한국을 대표하는 카리스마적인 경영자(NHK)', '삼성그룹 중흥의 시조(닛케이)'라고 평가했다.
각계 오피니언 리더들은 이 회장을 '위대한 기업인'을 넘어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본 '철학자'이자 '사상가', '예술가'로 기억했다.
이우환 화백은 문예지 월간문학 21년 3월호에 실린 '거인이 있었다'는 제목의 추모글에서 "내겐 이건희 회장은 사업가라기보다 어딘가 투철한 철인(哲人)이나 광기를 품은 예술가로 생각됐다"고 추억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정신적 몸살을 앓을 때까지 고민하고 분석하라고 강조했던 고인에 대해 "성공적 결정을 내린 생각중독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이 회장은 글로벌화·디지털화·지식기반경제화라는 21세기 패러다임 변화를 예견하고 이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21세기 글로벌 초일류기업의 원대한 비전을 제시한 비전가"라고 회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