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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냐 中이냐”…‘전략적 모호성’ 유지 놓고 고민하는 아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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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3. 05. 1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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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속 국가별 SWOT 분석④]
10개 회원국 다양성 아우르는 '중심성' 핵심 가치
남중국해 둘러싼 입장 차로 결속력 해칠까 우려↑
ASEAN-INDONESIA/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들이 지난 10일 인도네시아 동부 누사텡가라티무르선 라부안 바조에서 열린 제42차 아세안 정상회의 개막식에 참석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돈 쁘라뭇위나이 태국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 팜 민 찐 베트남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소넥사이 시판돈 라오스 총리,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훈센 캄보디아 총리,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호세 마리아 드 바스콘셀로스 동티모르 총리. /사진=로이터, 연합
"가장 중요한 것은 마르코스 주니어 행정부가 '하나의 중국' 정책과 관련해 말과 행동이 다른 이른바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의 필리핀 방문과,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의 미국 공식 방문을 앞둔 지난달 23일 중국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 타임스에 게재됐던 오피니언 내용 중 일부다. 신문은 필리핀과 미국의 유착을 경계하며 "마닐라(필리핀)가 (지역적)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시도에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중국은 최근 미국과 손을 잡은 필리핀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마닐라를 방문한 친강 외교부장은 지난달 중순께 엔리케 마날로 필리핀 외교장관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친강 외무장관의 방문 일정과 겹치는 18~24일에 중국 선박 100여척이 남중국해 자국 해역을 침범했단 사실이 28일 뒤늦게 알려졌다.

미국은 즉시 필리핀에 대한 무력 공격은 미국과 필리핀의 상호방위 조약을 발동시킬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며 "동맹국 필리핀과 함께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일 워싱턴에서 마르코스 대통령을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필리핀 방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철통같다"며 상호방위조약을 재차 확인했다.

얼핏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인한 갈등 같지만 기저엔 미국과 필리핀이 2014년 체결한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이 깔려있다. 필리핀이 자국 내 공군기지 4곳, 육군기지 1곳에 미군 배치를 허용한 협정인데 지난 2월 미군의 군사기지 4곳의 사용 권한을 추가로 허용했다. 미국이 대만에서 불과 400㎞ 떨어진 최북단 카가얀과 남중국해 최전선 팔라완 지역 등에 있는 군사기지를 추가로 확보하며 중국엔 큰 위협이 됐다. 남중국해 분쟁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인도·태평양 내 미국의 패권 확보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중국과 미국 사이 대만 문제까지 건드린 셈이다.

남중국해 분쟁은 중국과 필리핀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내에선 필리핀 외에도 베트남·브루나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가 분쟁 당사국이다. 중국과 경쟁하고 있는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내걸며 아세안 국가들에 군사·안보협력 제안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대만 문제에 있어서도 아세안이 차지하는 지정학적·전략적 요인으로 아세안은 미·중 경쟁으로 인한 가장 많은 압력을 받고 있는 지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세안은 그간 미·중경쟁에 있어 중립을 유지하는 기조를 보여왔다.

아세안이 가장 중요하게 내걸고 있는 핵심 가치는 '중심성'이다. 아세안 10개국 전원의 참석과 합의를 보장하고, 아세안 스스로가 의제 선정을 주도하고 구심점을 잡겠다는 것이 요지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아세안은 내정과 주권에 대한 불간섭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의사결정 방식으로는 '만장일치' 합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모든 결정이 회원국간 긴밀한 협의를 원칙으로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의를 이뤄 결정한다는 것이다. 보통은 특정 문제에 강력히 반대하는 국가가 없다면 동의로 간주한다.

이런 아세안의 중심성이 되려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받는 이슈가 바로 남중국해 문제다. 영유권 분쟁 당사국인 5개국은 '남중국해 행동준칙(COC)' 등 남중국해 문제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분쟁 당사국이 아닌 다른 국가들은 중국과의 밀접한 경제적 관계를 염려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분쟁 당사국과 중국간의 양자 문제라 생각해 아세안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대응을 꺼리는 것이다.

아세안 내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중립외교를 펼치고 있는 베트남도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중국에겐 단호한 항의를 하며 안보협력 확대를 논의하는 미국에 귀를 기울이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 반면 전통적인 친중국가로 분류되는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외에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중국의 중요성을 인식해 중국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남중국해 이슈는 분쟁 당사국 사이의 큰 격차와 역사·정치·지정학적 복잡함과 주권 문제에 대한 중국의 단호한 입장으로 단기간 내에 협상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남중국해 이슈가 해결되지 않고, 일부 분쟁 당사국이 중국의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경우 필리핀처럼 개별 국가 차원에서 미국과 손을 잡게 될 가능성도 높다.

아세안 내부에선 미군의 군사기지 확장을 허용하고 중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필리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필리핀이 이런 결정을 아세안 회원국들과 협의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같은 이합집산이 자칫 회원국 간의 불신을 키우고 결속력을 약화시켜 장기적으론 아세안 중심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세안이 진정으로 강대국 사이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단결된 구심점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까닭이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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