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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협박 일삼는 베트남 병원에 속수무책 내몰리는 한국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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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4. 01. 1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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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와 호치민시에 있는 K성형외과의 광고. "한국기술에 준한다"는 광고를 내세우고 있는 이 베트남 성형외과에 실제 한국인 의사는 A씨뿐이다. /하노이 정리나 특파원
한국인 의사 A씨는 베트남 K성형외과에 근무하고 있다. 한국 의사면허를 가지고 있는 A씨는 베트남 정부가 규정한 소정의 과정을 거쳐 의료행위증서(의료면허)를 받아 베트남에서 활동하고 있던 중 지난 2021년부터 K병원과 계약을 맺고 근무해 왔다. 앞서 베트남 내 다른 병원에서도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A씨는 K병원의 의료 통역 수준이 터무니없는 것을 비롯해 병원 곳곳에서 '뭔가 이상하고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베트남 현행법상 베트남어가 유창하지 않은 외국인 의사는 반드시 당국이 규정한 자격을 갖춘 통역인이 있어야 하고 진료 행위도 통역인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병원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관두려 했던 A씨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았다. 애초에 당국에 신고(등록)됐어야 할 자신의 진료 행위 자체가 등록되지 않은 것이다. 졸지에 불법진료를 해 온 꼴이 된 A씨는 해당 사실을 인지한 직후 즉시 진료를 중단하고 병원 측에도 강력히 항의했다.

A씨는 15일 본지에 "일을 못하겠다고 하니 병원 측이 되려 5년 계약 중간에 관둔다는 이유로 24억동(1억2888만원)이 넘는 위약금을 물라고 한다"며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것이 불법진료이니 자기네 병원을 관둔다면 이것을 고발해서 다시는 베트남에서 의사생활을 못하게 만들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말했다.

K병원과 분쟁 중인 A씨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지 못하고 3개월 째 쉬고 있다. 하지만 15일 현재까지도 K병원은 병원 홈페이지 메인과 의료진 소개에 A씨를 버젓이 올려 놓고 있다. A씨의 이름마저도 엉터리로 표기해놨지만 서울 강남의 지명을 딴 병원의 이름과 A씨, '한국의 표준 미(美)'와 같은 광고 문구를 내세운 탓에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병원이라 생각하거나 병원에 대해 큰 신뢰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한국인인 A씨를 빼면 사실상 한국과는 전혀 상관조차 없는 '베트남' 병원이다. A씨는 "이름도 베트남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한국이름을 쓴다고 저런 것"이라며 "한국의사를 흡사 유령의사처럼 쓴다"고 허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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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와 호치민시에 위치한 K성형외과. 의료진 중 한국인은 A씨뿐이고 현재 3개월 가량 진료를 보고 있지 않음에도 A씨를 의료진으로 소개해놨다. 이마저도 엉터리 이름으로 올려놨다/K성형외과 홈페이지 캡쳐
베트남 병원에 당한 한국의사는 A씨가 처음이 아니다. 한 때 대여섯명의 한국의사들을 대거 채용한 하노이 S병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18년 다른 한국의사 4~5명과 함께 해당 병원에 근무했던 한국인 의사 B씨에 따르면 한국 의사들 모두 제대로 된 노동계약서(근로계약서) 없이 구두계약 상태로 근무했고 임금 체불 문제가 불거지자 거듭 노동계약서 작성을 요구했다.

베트남인 소유의 S병원은 2020년 4월에야 계약서를 작성해줬지만 이마저도 노동계약서란 명칭 대신 '전문가 임대(賃貸)계약(Specialist Leasing Contract)'이란 이름으로 작성했다. K병원 역시 A씨와 '전문협력계약서'를 작성했다. 명칭 사용만 피했을 뿐 실제 내용은 말 그대로 '노동(근로)'과 관련된 계약, 노동계약서 그 자체다

B씨에 따르면 해당 계약서엔 구두계약 상에 포함돼 있지 않던 '3달치 월급의 10%를 병원에 보증금으로 맡겨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고 이후 병원 측은 세금을 명목으로 한국 의사들의 월급 5%를 추가로 빼앗아갔다. 납세 증명서를 보여달란 한국 의사들의 요구는 묵살됐고, 병원 측의 횡포와 임금체불이 계속되자 한국 의사들은 병원을 관뒀다. B씨 역시 체불된 임금과 보증금을 포기하고 S병원을 관뒀다

B씨는 "S병원을 관두자 집에 예고도 없이 직원을 보내 병원에 출근할 것을 요구하며 베트남에서 추방시키거나 교도소에 보내겠다고 협박했다"며 "다른 병원에서 일하거나 개원을 할 경우 불법이 되도록 만들어서 베트남에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만들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엔 불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최근에 다른 병원 근무를 위해 노동허가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했다. S병원 측이 베트남 노동부에 B씨가 여전히 S병원에 근무하는 것으로 등록해놔 B씨가 다른 곳으로 이직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B씨는 "담당 공무원까지 나서 S병원 측에 (B씨의) 등록을 풀어달라고 했지만 병원 측에서 거절했다"며 "노동부에는 이렇게 등록을 해놓고 정작 보건부에는 의사 등록을 안 해놨다. 보건부에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도 베트남에서 의료행위를 한 적이 없고 S병원에서 근무한 것도 모두 불법 의료행위가 되어버린 것"이라 하소연했다.

S병원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교민들의 백신 접종이 어렵던 2021년 하반기~2022년 초 한국의사들을 내세워 하노이 거주 한국 교민들에게 '백신장사'를 한 병원이기도 하다. 당시 베트남 정부는 "내외국인에 대한 차별 없이 모두에게 백신을 무료로 제공할 것"이란 방침을 밝혔지만 S병원은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공공연하게 백신 장사를 했다. S병원은 백신 비용을 청구하는 대신 "한국의사 진료비용 150만동, 백신 무료접종"이란 편법을 내세웠다.

당시 해당 병원을 찾았던 교민 C씨는 "한국의사를 본 시간은 1분도 채 안되고 혈압·심전도 검사나 백신 접종까지 모두 베트남사람이 하고 이마저도 금방 끝나버렸다"며 "당시 일반 교민들이 백신 맞을 방법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가서 맞았다. 일부 사람들이 신고를 했다는데 어떤 처벌도 없이 지금도 버젓이 영업한다"고 말했다. 다른 교민 D씨도 "교민사회에도 해당 병원과 한국 의사들 사이 문제가 있단 것이 알음알음 알려져 있지만 백신 장사를 하고도 멀쩡한 병원인데 이길 수가 있겠나"라며 "오진이나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묻힐 것이란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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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S병원은 코로나19 사태 당시 내외국인 구분 없이 백신 무료 접종을 내세웠던 베트남 정부 방침과 달리 한국의사 진료를 미끼로 교민들에게 접종 1회당 150만동(8만원)을 받았다. 영수증에는 심전도 검사 40만동·혈압 및 심박 검사 30만동·한국의사 진료비 80만동의 항목이 청구됐다. 당시 베트남 보건소와 병원에선 의료진이 별도의 진료비 청구 없이 혈압·심박 검사 후 무료로 백신을 접종했다. /독자제공·하노이 정리나 특파원
'한국인 의사'를 내세워 영업을 하고 있는 K병원과 S병원은 모두 한국 의사들의 의료행위를 보건 당국에 등록·신고하지 않고 되려 이것을 한국의사들의 '목줄'로 쥐고 있다. 가장 기본인 노동계약서 작성조차 교묘하게 피해가거나 갖가지 이유로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A씨와 B씨는 물론 다른 한국 의사들도 "(한국 의사들의) 진료행위나 의사 등록이 보건 당국에 제대로 이뤄졌는지 여부를 외국인 의사 개인이 알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마저도 베트남 병원 소유주가 보건 당국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의사들은 "일본이나 서구권 의사들은 이런 불공정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그 나라 대사관에서 가만있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A씨는 "K병원, S병원은 물론 훨씬 더 예전의 B병원까지, 모두 작당이라도 한 듯 똑같은 수법으로 한국의사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그는 "피해를 본 한국 의사들이 한둘이 아닌데 다들 병원 측의 보복을 두려워하거나 체념하고 베트남을 떠난다"며 "바로 잡지 못하면 대(對)베트남 의료부문 진출은 커녕 당장 베트남 거주 교민들도 한국의사면허를 가지고 있는 의사들에게 안심하고 진료 받기 조차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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